김병현, 선발고집은 이제 그만

MLB * NPB 2008/02/18 00:00 Posted by 비회원

야구선수라면 객관적인것과 주관적인것 이 두가지 문제를  한번쯤은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의 생각이 옳다라는 주장과 내가 아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게 옳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주관이 너무 뚜렷하면 고집불통이란 소리를 듣게 되고 반대의 경우는 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좋겠지만 자기중심이 없는 선수처럼 보일때도 있다.

  [애리조나 시절 김병현]

 
그럼 김병현(29)은 어떤 선수일까.
그동안 언론에 비친 김병현은 자기중심적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선수로 인식되어 왔다.
타고난 천성이 그럴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꼭 그런것만은 아닌듯 싶다.
어릴때 대표적인 그의 일화 한토막을 예로 들자면 광주 수창초등학교 시절 팀이 우승을 거둔적이 있다.
물론 그 우승의 중심에는 김병현의 공로가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몫이 되지 못한다.
이걸 본 그의 아버지는 보통의 우리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김병현에게 하는데 그게 바로 `야구 그만둬' 다.
 
왜 김병현의 아버지는 아직 어린 선수에 불과한 아들에게 저런 말을 했을까. 더군다나 팀 우승에 절대적인 역활을 한 자랑스러운 아들일텐데 말이다. 아마도 독기가 부족한 그리고 상대적으로 외소한 체격의 김병현이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질타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영향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김병현은 자존심이 강한 선수 그리고 주관이 뚜렷한 선수로 인식되어 있다. 항상 최고가 되고자 했던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광주 수창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김병현은 그당시 이름꽤나 날리던 선수중 한명이었다.
광주 무등중학교 3학년때 정통 오버스로에서 언더핸드 투수로 전환한 김병현의 진가는 광주 제일고로 진학한 이후부터 확실한 두각을 나타낸다. 2학년때인 1995년 청룡기 대회에 당시 3학년이었던 서재응(KIA)과 1학년인 최희섭(KIA)과 함께 제일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금이야 옛이야기쯤으로 치부할수 있지만 그당시 해태 타이거즈 팬들의 기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해태에 입단한다면 당시 은퇴와 일본진출을 앞두고 있던 김성한과 선동열의 공백은 문제 될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모두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버렸다. 광주일고가 배출한 코리안 메이저리거 라는 자랑스러운 모교의 영광만 뒤로 한채 말이다.
 
 
 
1995년 청룡기 대회가 김병현 이란 이름 석자를 알려준 대회였다면 1998년 성균관대 재학시절 참가한 한-미 대학대표 경기와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이탈리아에서 열린 이대회를 끝으로 야구 월드컵으로 개명) 그리고 방콕 아시안게임은 김병현의 운명을 바꿔 버린 한해로 기억된다. 한-미 대학대표 경기에서 김병현은 선발투수로 나와 6.2 이닝동안 무려 15개의 탈삼진을 기록한다. 20개의 아웃카운터를 잡는 동안 15개의 아웃을 삼진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또한 그해 열렸던 세계 야구선수권대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역시 선발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한국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대회에 참가한 다른팀의 지도자들이 김병현의 구위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그리고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는 6이닝 퍼펙트에 8타자 연속삼진을 기록했었다. 당시 황색바람을 일으켰던 노모와 박찬호의 영향으로 야구장에는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웃터들이 한국과 일본의 대표팀 선수들을 관찰하러 왔음은 물론이고 이 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김병현은 결국 성균관대 3학년이었던 이듬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다. 
 
1999년 메이저리그 입단 당시 김병현의 계약금 총액은 무려 225만달러(당시 우리돈 약 27억원)였다. 225만달러가 가진 상징성은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당시 역대 MLB 신인선수 중 계약금 통산 12위(투수로는 3위)였으며 팀으로서는 첫번째 특급대우 선수였기 때문이다.(애리조나는 1998년 창단) 물론 MLB 에 진출한 국내선수중에서도 최고액 계약금이었다.
   
김병현의 역사적인 첫 등판이었던 5월 30일 뉴욕 메츠전에서 당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였던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1999년 김병현은 총 25경기에 등판해 27,1 이닝을 던져 1승2패1세이브 4.61의 평균자책점과 31개의 탈삼진을 기록해 리그에 적응해 나간다. 이듬인 2000년에는 첫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61게임 출전해 70.2 이닝을 던져 6승6패 4.4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탈삼진 능력이었다. 이해 그는 무려 1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어린 선수가 클로저로서 보여주는 능력치고는 대단한 일이었다.
 

 

김병현의 주특기는 언더핸드 투수로는 엄청난 구속인 90-93 마일에 이르는 빠른 페스트볼과 슬라이더,싱커였다. 하지만 신종 비밀무기가 연일 화제거리를 몰고 다녔다. 바로 `업 슛'이라 불리우는 구질이 바로 그것인데 이 구질은 공이 밑에서 위로 갑자기 휘는 구종이다.타자입장에서는 페스트볼처럼 보이지만 스윙을 할쯤에는 공이 위로 솟구쳐 버리니 마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타자들이 이야기하곤 했다. 당시 김병현과 상대했던 타자들의 말을 몇가지 나열하자면 `등 뒤쪽으로 빠져나갈것 처럼 보이던 공이 갑자기 스트라이크가 되버린다.'  `공이 보이지 않는다.사라져 버렸다'  `공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게 아니라 솟아버리다니 믿을수 없다.' 라고 했으며 심지어는 `저런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져 줘야 한다.' 라는 말까지 했었다.
 
특히 2001년과 2002년에는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때로 2001년에 98이닝을 던지는 동안 허용한 안타수가 고작 58개에 탈삼진은 113개를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2.9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5승 6패 19세이브) 2002년 역시 84이닝 동안 64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92개의 탈삼진과 더불어 자신의 역대 최저인 2.0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다.(8승 3패 36세이브)
 
더군다나 김병현은 2001년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킨 선수다. 당시 리그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맞붙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 그는 4차전 팀이 2점이나 앞서고 있는 8회에 마무리로 등판해 3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솎아내며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으나 9회 2사 1루에서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더니 연장 10회말에는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까지 맞으며 인생일대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다. 하지만 김병현의 시련은 이걸로 끝이 아니였다.

 [스캇 브로셔스에게 홈런을 허용하고 주저앉은 김병현]

 
5차전 9회, 팀이 2점을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를 하러 다시 등판하는데 4차전과 같은 2사 2루에서 또다시 아웃카운터 하나만을 남겨놓고 스캇 브로셔스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4차전 경기에서 시련을 겪은 김병현에게 복수할수 있는 기회를 밥 브렌리 감독이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결국 그날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알폰소 소리아노의 끝내기 적시타로 양키스가 승리하면서 모든 비난은 김병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비록 다행히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만약 우승을 양키스에게 내주었다면 김병현은 피닉스 팬들에게 역적이 되었음은 물론이고,그의 야구인생도 거기서 끝나버렸을지 모른다.
 
2003년 김병현은 자신이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선발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김병현의 운명은 뒤바뀌게 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게 바로 그의 부상이다.
혹자들은 지금 김병현의 선발고집이 그의 구질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을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엔  김병현의 투구스타일상 마무리가 더 적합하다는 말에는 동의 하지만 무엇보다 경기에서 부상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선발투수로서 3번째 등판이었던 4월 15일 대 콜로라도전에서  6회 프레스톤 윌슨이 타구를 친후 방망이가 두동강 나면서 배트 헤드부분이 김병현의 복숭아뼈 윗쪽을 강타했었다. 김병현은 방망이에 맞은 자신의 다리를 만지며 굉장히 고통스러운듯 펄쩍 뛰었고 팀 트레이너가 마운드로 달려오자 큰 부상이 아니라는듯 코칭스탭들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6회를 끝까지 마치며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는데 당시 한국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병현의 부상은 상당히 심했다고 한다. 김병현의 다친 부위를 점검하러 간 팀 트레이너의 말에 의하면 `복숭아뼈가 심각하게 부어있다. 예상외로 부상이 심하다' 라고 했다.
 
광주일고 3학년 당시 좌익수를 보던 도중 라이트 불빛에 가려 공을 순간적으로 놓치는 바람에 얼굴을 강타당했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김병현은 자신의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세경기를 선발투수로 등판하는데 문제는 별 부상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그가 드닷없이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당시 애리조나 팬들과 팀 동료중 이런 김병현의 모습을 보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오해를 한것이다. 뒤늦게 뛰다 아프다고 한것은 핑계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김병현이 비록 미국에서 프로생활을 한 선수지만 그의 머리에는 한국식 야구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선수다.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뛰었으며 결국 이런것을 투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쪽 동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이런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물론,팀 동료였던 커트 실링에게 상당히 불쾌한 소리마저 들어야 했었다. 김병현의 구위감속과 4사구 남발은 투구시 축이 되는 오른발 부상,즉 이 경기 이후로 확실히 달라진다.
 


 

 
타자도 타격감이 있듯 투수도 투구감이 있다. 타격은 모든 동작에서 오는 일련의 과정이 복잡하기에,그리고 연결이 되어 있기에 어느 한쪽부분이 잘못되면 전체적인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는다. 투구도 마찬가지다.
피칭의 파워포지션의 개념에서 본다면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는 스트라이드시 축이 되는 오른발 부상은 투구리듬과 더불어 공의 구속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공을 릴리스하는 타점,그리고 도움닫기에 필수인 스트라이드 보폭에서의 감각부족은 물론 힘있게 박차는 동작이 상당히 부담되기 때문이다.
 
김병현은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를 시작으로 콜로라도 로키스-플로리다 마린스-애리조나 D-백스-플로리다 마린스 팀으로 적을 옮기면서 저니맨 투수로 전락해 버렸으며 비록 선발투수로서 나름대로의 활약을 펼치기는 했지만 과거에 비해 확실히 구속이 떨어져 버린 투수가 되었다.특히 문제가 되는것은 4사구 남발인데,그의 성격상 칠테면 쳐봐라 식의 배짱투구가 번번히 난타당하면서 자신감 마저 잃어버린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작년 시즌 그는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되어와 다시 애리조나로 갔다가 또다시 플로리다로 되돌아 오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비록 10승 8패라는 성적을 거둬 선발투수치곤 준수한 기록을 남겼지만 118.1 이닝을 던지는 동안 131안타 20홈런을 허용했으며 그의 전매특허인 탈삼진은 겨우(?)107개에 그쳤다. 무엇보다 실망한 것은 무려 6점대(6.09) 평균자책점이다. 이정도의 성적으로는 우승이 목표권인 팀에서는 선발 한자리를 꿰찰수 없는 성적이란것은 자명하다.그나마 플로리다 였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 김병현은 FA 신분으로 새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달려야 하는 나이에(1979년생)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왔는지 마음이 아프다.
물론 김병현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하다. 그는 아직까지 매력이 있는 선수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새로운 팀을 찾긴 할것이다. 그럼 김병현이 살아남기 위해서,아니 예전과 같은 실력을 되찾기 위해서 선결되어야할 과제는 뭘까.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의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한국야구야 언더핸드나 사이드암 투수가 그나마 찾기가 쉽지만 메이저리그는 아직도 언더핸드 투수에 대한 희귀성은 소중한 존재다. 지금 김병현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야구에서 바라보는 김병현의 가장 큰 장점은 `어색함과 낯설음'이 가장 큰 무기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선발투수는 타자와 상대하는 횟수가 많다. 한경기에서 최소 2-3번은 맞상대가 가능하며 타자입장에서 김병현의 공은 적응만 되면 공략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가 마무리로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시즌 162경기를 펼치는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김병현과 맞상대 하는팀은 많은 팀수와 더불어 자주 접할수 없다. 짧게 1이닝 마무리 투수로서 그것도 김병현과 같은 희귀성 스타일의 투수라면 이것만큼 유리한 조건도 없다. 지금 김병현은 자신의 장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구속문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짧은 이닝을 던지면서 파워풀한 공을 뿌리는 마무리와 긴 이닝을 던지면서 완급조절을 해야하는 선발투수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는 지금 선발자리가 보장된 팀만 원해서는 결코 그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셋업으로 다시 시작하더라도 앞보다는 뒤에서 나오는 투수로 던져야겠다는 마인드로 바꿔야 한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 그리고 아직 갈길이 먼 나이. 이 모든걸 감안할때 그의 마무리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김병현 !! 언제까지 고집만 부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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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해라. 뭐가 그리 급할까. 자기 이름도 구라였어. 깜짝 놀랬어. ㅎㅎ 그냥 인생 자체가 구라인거야? 당분간 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하고 있길.. 아주 이미지 관리 때문에 발악을 하는구나..차라리 연기자의 길을 걷지 그래..푸하하
by 윤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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