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야구에 흠뻑 빠져 있던 지난 8월 18일 일본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기요하라 가즈히로(오릭스 버팔로스)가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올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을 예정인데 그동안 일본야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의 은퇴라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든다. 국내야구로 비교하자면 삼성의 양준혁 ,KIA의 이종범이 은퇴를 선언한거나 다름이 없는 그런 존재의 은퇴선언인 셈이다.
 
기요하라 라고 하면 일본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야구팬일지라도 한번쯤은 그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역대 고시엔대회 최다홈런(13개)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문 PL학원 출신이자 격투가 추성훈과 절친한 사이로 유명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로 알려진 기요하라의 나이가 41세(1967년생)다. 현역선수로는 이미 황혼기를 지난 선수지만 기요하라가 일본야구계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지금은 주니치 드래곤스 사령탑을 맡고 있는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1980년대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다면 그 뒤를 이어 1980년대 중반(1986년 데뷔)부터가 기요하라의 시대였으며 현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쓰이 히데키가 기요하라의 뒤를 이어받았다고 보면 된다. 마쓰이가 데뷔할쯤 그의 별명이 `제2의 기요하라' 였으니 말이다.
 
기요하라는 일본 고교명문 PL학원(오사카 PL가쿠엔고교) 시절 고시엔대회(고시엔은 춘계대회,하계대회 1년에 2번 열림) 에서 3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3학년 하계대회 결승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기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개인통산 500홈런 달성]
 
고교팀수가 4,100여개가 넘는 일본의 엄청난 저변을 감안할때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란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지역대회 예선통과를 하는것 조차 버겨운 일이며 설사 통과를 하더라도 본선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험난한 일정이 기다린다. 한신 타이거즈 홈인 고시엔 구장 흙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졸업을 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이며 소속학교가 고시엔대회 본선이라도 오르면 승패와 상관없이 그자체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할 정도다. 본선에 올라 조기에 탈락하면 선수들은 고시엔 구장 흙을 주머니에 넣고 가져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시엔대회는 꿈의 무대라고 볼수 있다.
 
기요하라의 고시엔에서 활약은 당시 언론의 주목대상이었고 기요하라 역시 어릴때부터 소망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미우리 구단 또한 기요하라의 교진입단을 기정사실화 하며 언론에 떠벌렸지만 최종으로 선택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요하라의 고교동료였던 구와타 마스미(2007년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뛴적도 있음. 현재 일본 소년야구연맹 자이언츠 회장)였다.
평생의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요미우리 입단이 좌절된 기요하라를 데려간 곳은 세이부 라이온스.
비록 자신이 원한 팀은 아니였지만 기요하라는 이팀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세이부 라이온스의 황금기를 수놓은 주역으로 활약한다.
 
 
 


 
 
기요하라는 1986년 루키시즌(프로 첫안타가 홈런이었다)부터 팀의 4번타자를 꿰차며 타율 .304 홈런 31개를 쳐내며 그해 신인왕을 차지한다. 또한 훗날 FA(1997년)로 팀을 떠날때까지 11년동안(1986-1996) 8번의 리그우승과 더불어 같은기간 일본시리즈 6회 우승의 신화를 써냈다. 기요하라는 1997년 FA를 선언하며 꿈에 그리던 교진에 입성을 한다.
 
2002년 일본시리즈에서 친정팀 세이부와 맞붙은 기요하라는 지금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홈런을 뽑아 내는등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일조하는데 그당시 요미우리 타선에는 마쓰이 히데키도 있었다.
요미우리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500홈런을 기록했던 그는 교진에서 은퇴하길 바랬지만 결국 2005년을 끝으로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한다. 필자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것은 2005년에 비록 기요하라가 잦은 부상으로 이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요미우리 구단의 처사는 굉장히 아쉽다.
 
이해에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면서도 22개의 홈런을 쳐냈지만 시즌중반부터는 팀 전력외로 구분. 결국 시즌이 끝난후 쫓아내듯 기요하라를 내쳐버렸기 때문이다.[우연인지는 몰라도 요미우리를 떠난 기요하라를 대신해 이승엽이 이듬해인 2006년 롯데 치바 마린스에서 이적해와 그를 대신했다. 하라감독이 팀 운영상 현재 이승엽을 2군에 내렸다고는 하지만 올시즌 요미우리가 이승엽에게 하는 짓거리를 보면 기요하라의 과거가 생각난 것은 필자만의 생각뿐일까]
 

 [기요하라 가즈히로 타격연속동작]
 
세이부 시절인 1987년 요미우리와 일본시리즈에서 만난 기요하라는 마지막 우승직전 아웃카운터 하나를 남겨두고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린 일화로 유명하다. 자신이 그렇게도 뛰고 싶어했던 요미우리에게 비수를 꽂는 그 순간이 가슴아파 눈물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기요하라의 교진 사랑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것 이상의 짝사랑이었을 것이다.
 
오릭스로 이적한 기요하라는 2006년 9월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리고 2007년에는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자 더이상 필드에서 그의 모습은 보기 힘들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7월 그는 기적처럼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인 지난 8월 18일 올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죽다가도 살아나는 데드볼(hit by pitch ball)처럼 2006년 다르빗슈 유의 사구를 맞고 실려가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요하라는 2006년까지 통산 2,316경기에 출전해 7,792타수 2,118안타 타율 .272  2루타- 343개 3루타- 12개 득점-1,280 타점-1,527 홈런 525개(역대 5위)를 기록중이다.
 
`일본야구계의 반쵸(대장)' 로 불리우며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 냈고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훗날 오릭스 버팔로스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얼마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마음은 아직도 도쿄돔에 가있는지 모른다.
 
 
사진&영상/ 일본야구기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 세이부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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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해라. 뭐가 그리 급할까. 자기 이름도 구라였어. 깜짝 놀랬어. ㅎㅎ 그냥 인생 자체가 구라인거야? 당분간 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하고 있길.. 아주 이미지 관리 때문에 발악을 하는구나..차라리 연기자의 길을 걷지 그래..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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