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가 열리기전 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난후 모든 언론들은 살아난 SK의 방망이에 주목했다. 이건 단순히 주목수준에 머물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야구해설위원은 한국시리즈 전망을 놓고 8:2정도까지 SK의 우세를 점치는 분도 있었다. 그만큼 플레이오프 막판 SK 야구가 보여준 무서운 집중력은 공포심을 갖기에 충분했고, 김성근 야구가 이번에도 무난하게(?)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할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이 상당수였다.
어제 윤석구의 야구세상 후원인을 자칭하는 지인께 전화한통이 왔다.
대뜸, SK 타선이 살아났는데 KIA가 불리한것 아느냐? 라고 물어보길래 “두산 선발과 KIA 선발이 같다고 보느냐? 타격은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 언급할게 아니다.” 라고 간단히 대답을 해줬다.
KIA 타이거즈가 SK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 아퀼리노 로페즈의 호투와 8회말 터진 이종범의 결승타에 힘입어 5-3으로 역전승,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전을 승리로 가져왔다.
선취점은 SK의 몫이었다. SK는 3회초 공격에서 선두타자 나주환의 중전안타 후 정상호의 희생번트로 맞이한 2사 3루 찬스에서 이날 리드오프로 출격한 박재홍의 중전 적시타로 앞서갔다.
상대투수가 그 이전까지 막강한 구위를 자랑하는 로페즈라는 점을 감안할때 선취점의 중요성을 알고 희생번트를 지시한 SK의 작전이 정확히 적중한 것이다. SK는 이어진 4회초 공격에서도 정근우가 2루타로 기회를 잡자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박정권이 다시 2루타로 화답하며 단숨에 2-0으로 달아난다. 이어진 공격에서 최정의 보내기번트와 김재현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3루 찬스에서 나주환의 잘맞은 타구가 1루수 최희섭의 글러브에 빨려들며 더블아웃, 초반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다.
KIA는 3회까지 SK 선발 카도쿠라의 구위에 눌리며 그동안의 경기감각에 따른 빈타가 우려됐지만 곧이어 이어진 4회말 공격에서 한점을 따라간다. 김원섭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3번 장성호가 이날 KIA의 첫안타를 쳐내며 만든 1사 1,3루 찬스에서 김상현이 큼지막한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한점을 쫓아간것.
SK는 5회초 공격에서 달아날 찬스가 있었다. 정상호가 몸에 맞는공으로 출루한후 희생번트와 박재홍의 2루땅볼로 만든 2사 3루에서 로페즈의 폭투로 3루주자 정상호가 홈으로 데쉬했지만 `누워쏴' 김상훈의 재빠른 넥스트 플레이에 아웃 당하며 아까운 공격기회를 날렸다.
KIA는 6회말 공격에서 드디어 역전에 성공한다. 카도쿠라가 5.1이닝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간 후 고효준이 올라왔는데 2사까지 잡아놓고도 세타자 연속 볼넷이란 믿기 힘든 피칭내용으로 2사 만루 찬스를 제공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타자는 6회초 수비에서 박정권의 우전안타를 실책해 2루까지 보내준 이종범이었다.
SK도 고효준을 내리고 윤길현으로 투수가 바뀐 상태 상황. 이종범은 윤길현의 2구째 공을 그대로 잡아당겨 좌중간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단숨에 3-2로 역전.
SK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SK는 곧바로 이어진 7회초 공격에서 1사 후 포수 정상호가 로페즈의 2구째 슬라이더를 그대로 통타해 좌중간 펜스를 넘겨버렸다. 3-3 동점. SK 야구의 저력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 SK가 얻은 점수는 이것이 전부였으며 1차전의 대미는 다시한번 이종범의 손에서 작성된다. 이종범은 8회말 1사후 최희섭의 볼넷과 김상현의 우전안타, 그리고 김상현의 도루로 만든 2,3루 찬스에서 구원투수 정대현을 상대로 깨끗한 1타점 우전적시타를 터뜨리며 다시 4-3 리드를 가져온다. 단 1이닝 공격만 남겨둔 SK 입장에서는 뼈아픈 순간이었다. 한점차 리드의 불안감을 없애버리듯 다음 타자 김상훈도 적시타 대열에 합류하며 최희섭까지 득점. 5-3 스코어를 확정한다.
9회초 마운드에 오른 `0.53'의 평균자책점 투수 유동훈은 위력적인 싱커를 바탕으로 세타자를 깔끔하게 틀어막으며 한국시리즈 첫 세이브를 챙겼다.
단 2명의 투수로 1차전을 끝낸 KIA, 이것이 이닝이터의 막강함이다.
KIA 선발투수 아퀼리노 로페즈는 8이닝동안 마운드를 책임지며 6피안타(1홈런) 4사구 2개, 7탈삼진으로 3실점했다. 정규시즌에서도 위기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는 위기관리 능력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140km 중후반대의 포심 패스트볼(이날 경기에서는 타자 몸쪽으로 가라앉는 싱킹 패스트볼도 자주 보였다)과 위기때마다 포크볼,슬라이더를 뿌리며 KIA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다 해냈다. SK가 플레이오프전에서 만났던 두산의 선발투수와 비교할때 수준이 다른 모습이었다.
로페즈가 3회에 위기를 맞은것은 `셋업 피치' 능력이 정규시즌과 비교해 상당히 떨어졌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봤다.
셋업피치 즉, 어떠한 목적구를 던지전 타자의 코스 시선을 유도하는 이것은 로페즈가 위닝샷을 아웃코스쪽으로 설정했고, 그공을 던지기전 타자의 코스선택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인코스 공에 대한 제구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로페즈는 유달리 인코스에 바짝 붙이는 투구로 타자의 코스시선을 유도했는데 5회초에는 정상호를 상대로 몸에 맞는 공이 나왔을 정도로 극심했다.
또한 초반에 거의 모든 공이 낮게 제구됐던 것에 비해 실점 상황에서의 로케이션을 보면 구종선택의 문제라기 보다는 바로 이 `셋업피치' 구사력이 다른 결과(정근우에게 허용한 3루 옆을 꿰뚫은 2루타가 대표적인 예)로 나타났기에 발생한 것이다. 셋업피치는 말그대로 다음 공(위닝샷)을 던지기 위한 일종의 떡밥 투구이기때문에 반드시 로우볼을 던져야 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 로페즈도 인간이기에 오랜만에 경기를 치른것이 감각의 차원에서 나름 어려움이 있었을거라고 본다. 어찌됐던 로페즈는 한국시리즈란 큰 무대에서 8이닝을 책임져줬다. 투수가 자주 바뀌면 모든 데이타를 총동원해서 귀신같은 대타작전을 펼치는 김성근 감독이 어떻게 손을 대볼수도 없는 훌륭한 이닝이터로서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KIA는 이날 경기에서 순리대로 유동훈을 9회에 올리며 깔끔한 투수운영을 했고, SK 입장에서는 예상대로 6명의 투수(카도쿠라-고효준-윤길현-이승호-정대현-정우람)를 총동원 하는 불펜의 힘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김광현의 부재가 굉장히 뼈아팠을 것이다.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神'이란걸 증명했다.
자꾸 되풀이 해서 두산에겐 미안하지만, 큰 경기에서는 미치는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 결국 베테랑 타자가 해줘야 한다. 두산 김동주는 그 몫을 못했고 KIA는 이종범이 해냈다. 이게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1차전의 차이점이다. `타석에서 기회는 두번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3할 타율은 위대하다' 의 명제로만 놓고 봤을때 6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윤길현을 상대로 쳐낸 2타점 적시타는 이종범 특유의 경험에서 나온 한방이었다고 본다. 2구째 인코스 조금 높은 공(필자는 슬라이더의 제구력이 되지 않았던 공이라고 봤다)을 다소 먹힌듯한 감은 있었지만 어찌됐던 적시타를 만들어냈는데 이런 코스의 공은 타격시 뒤쪽 손목(오른손)을 빨리 되감아 버리면 잘 맞더라도 3루쪽 파울타구가 나올수밖에 없다.
찰라의 순간에 실투라고 느낀 이종범은 컨택트 지점까지 충분히 In Side Batting 즉, 배트의 노브부분을 충분한 시간까지 끌고 나와서 가격을 했는데 이렇게 되면 배트 헤드가 그립부분보다 더 늦게 컨택트지점까지 가게돼 파울타구를 안쪽으로 넣는데 가장 용이해진다. 경험많은 타자의 위대한 타격기술이었다.
8회말 역전 적시타도 이종범의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당시 주자 2,3루 상황에서 1루에 주자가 없었던 관계로 SK 1루수 박정권과 2루수 정근우는 1,2루간의 폭을 상당히 좁혀놓은 상태였다. 그쪽으로 타구가 오면 안타보다는 잡힐 가능성이 더 많았고, SK 벤치의 지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대현의 투구도 아웃코스를 선택했다. 만약 SK의 수비위치를 보고 이종범이 정대현의 그공을 잡아당겨 쳤더라면 범타로 끝났을 가능성이 매우컸다고 봤다. 하지만 1,2루간의 수비폭이 타이트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대로 밀어쳐 우전안타를 만들어 냈는데 이건 경험이 없으면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다.
KIA에겐 그순간이 큰것 한방보다는 안타 하나가 간절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국내프로야구사에서 정규시즌 MVP-올스타전 MVP-한국시리즈 MVP(1993년,1997년 두차례)를 모두 차지한 유일한 선수다. 큰경기에 그만큼 강했고 40살의 나이에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멋진 활약을 이번 1차전에서 재현해냈다.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것이다. 1차전에서 이종범의 활약이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여전할지, 아니면 미풍으로 그칠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보여준 타격모습으로만 놓고 봤을때 조용할것 같지는 않다. 역시 `神'이란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여주는게 아니란걸 다시금 확인했다.
SK 정상호와 박정권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정상호는 요 근래 들어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포수다. 단순히 대형포수라고 함은 수비력뿐만 아니라 타격에서도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7회초 로페즈에게 뽑아낸 좌중월 솔로홈런은 대단한 타격기술이었다. 종으로 떨어지는 공은 허리로 타격을 해야한다는 타격이론에서의 명언이 있다. 이말은 배트가 아닌 정말로 사람 허리로 타격을 한다는뜻이 아니라, 그만큼 타이밍을 빨리 가져가지 말고 허리 회전의 이전의 리듬 즉, 리듬감을 살려서 타격을 하란 뜻인데 문제는 어떤 볼카운트, 그리고 어떤 코스로 변화구가 올지 모른다는데 있다.
정상호가 로페즈의 공을 통타한 공의 위치로 볼때(타자가 느끼기에) 아웃코스에서 약간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이었다. 이건 타자가 예측만 한다면 가장 치기 쉬운 공(특히 우투수와 우타자의 대결)이다. 평소 변화구에 약점이 많은 타자로 정상호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날 홈런을 쳐내던 모습은 이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로페즈의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여타의 타자라면 굉장히 멀어 보이던 아웃코스의 공이었다. 하지만 정상호는 리치가 굉장히 긴 타자다. 아마 홈런을 허용한 후 로페즈도 깜짝 놀랬을것이다. 임팩트지점에서 뒷팔꿈치를 충분히 끌고 가는 스윙을 했기에 멋진 홈런포가 나왔다고 본다.
박정권 역시 플레이오프때의 활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정근우를 홈으로 인도했던 4회초 2루타 장면은 섬득할 정도의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는데, 올시즌이 끝나면 과연 어느정도 수준까지 기량이 발전할지 감당이 안될정도다. 박정권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우승의 가장 큰 역할을 해야할 선수다. 기회를 잡았고, 스스로도 긴장감이나 부담이 없다고 하니, 앞으로 남은 경기의 승부처에서 그의 모습을 자주 볼수 있을것 같다.
8회말 이종범의 `위장 스퀴즈번트'시 배트는 돌았다
8회말 주자 1,3루 상황. 이종범이 노스트라이크 원볼 상황에서 스퀴즈모션을 취하자 3루주자 최희섭은 스타트를 끊을듯한 모습을 보였고 때를 같이해 1루주자 김상현은 2루 도루를 감행했다. 결과는 세이프.
포수 정상호는 2루에 공을 던져보지도 못했다. SK가 정규시즌에서 자주 써먹었던 방법을 KIA가 그대로 답습한 작전이 성공한것이다. 하지만 이종범이 번트모션에서 배트를 뒤로 빼지 않았음도 불구하고 심판은 볼로 판정해 버렸다. 이미 공은 포수 글러브에 들어간 순간이었고 이종범의 배트헤드는 분명히 거둬들이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볼카운트는 타자에게 유리한 0-2 상황이었고 이종범은 역전 결승타를 곧바로 터뜨린다.
김성근 감독이 나와서 어필을 해봤지만 심판은 받아주지 않았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지만 KIA로서는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아닌것은 아니기에 이점은 심판들이 반드시 이날 경기를 복기해서 실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볼넷은 눈물의 씨앗, CK포 때문?
SK 선발 카도쿠라가 6회 1사까지 잡고 물러난후 고효준은 이용규,최희섭,김상현을 상대로 연속해서 볼넷을 허용했다. 이용규를 상대로 해서는 제구력이 잡히지 않았기에 볼넷을 허용 했다지만 최희섭과 김상현과의 대결에서는 분명 피해가는듯한 인상이 짙었다. 올시즌 3할,30홈런-100타점 타자들인 이 선수들이 상대팀에게 주는 압박감은 눈으로 보는것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이종범의 적시타로 동점을 헌납해야 했던 6회말 고효준의 연속 볼넷 허용이 이날 경기의 실질적인 승부처였던 셈이다. 야구에서 가장 좋은 진루타가 안타이듯(1사 2루 상황에서 주자를 3루에 보내놓고 타자가 죽는걸 칭찬하는 해설자는 해설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공격의 시발점은 볼넷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박빙의 승부처에서 투수가 허용하는 볼넷은 `눈물의 씨앗' 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동안 야구 역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경험들이 모두 좋지 않은 결과로 증명됐기에 나온 말이다. KIA는 불과 1년전만 해도 상상할수 없었던 중심타선들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단단히 맛보고 있는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은 KIA의 `경기감각 회복'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듯한 느낌이지만 승리로서 분위기를 탈수 있는 여건은 충분했다고 본다. 이건 차츰 경기를 치르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기에 KIA 입장에서는 그렇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SK는 무엇보다 카도쿠라 켄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내줬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보다시피 1차전은 SK가 잡을수도,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의 기세를 이어갈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선발투수 운영을 어떻게 할것인지가 김성근 감독에겐 큰 고민이 될듯 싶다. 2차전 선발투수는 KIA 윤석민과 SK 송은범이다. 내일 다시 2차전 경기내용을 가지고 돌아오겠다.
사진/ OSEN, KIA 타이거즈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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