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관한 타격분석을 한적이 있다.
당시에는 타격분석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듯 싶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더 해볼까 한다.

1973년 치바현 치바시에서 태어난 오가사와라는 학생야구시절때만 해도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였다.
또한 내·외야 를 넘나들며 나름의 멀티플레이어로서 활약하지만 특화된 포지션이 없던 선수였다. 중학교시절에는 외야수, 고등학교때는 내야수, 이후엔 포수로도 활약했다. 투수를 제외하곤 야수로서 거의 모든 포지션을 섭렵(?)했던 선수다. 오가사와라의 고교시절 성적표를 보면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수 있는데 공식대회에서 단 한개의 홈런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야구선수로는 다소 외소한 체격(178cm)에 맞게 전형적인 교타자 스타일의 선수였는데 지금처럼 홈런을 펑펑 때려대는 모습이 믿어지질 않는다.

오가사와라는 고교졸업후 프로지명을 당연히 받지 못한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실업 NTT관동에서 사회인 야구를 하면서부터다.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4번타자이자 이번 WBC 일본대표팀의 4번타자가 유력한 마츠나카 노부히코와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오가사와라는 당시 포수로서 맹활약을 펼친다.
이 두선수의 불꽃타선을 바탕으로 NTT관동은 당시 실업 최강의 팀으로 탈바꿈 했는데 이후 프로구단으로부터의 스카웃 제의는 당연했던 것. 오가사와라의 꿈은 이때부터 실현되기 시작한다. 1996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니혼햄 파이터스에 3순위 지명을 받은 오가사와라는 이듬해부터 내·외야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로서 활약하는데 공을 맞추는 능력만큼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에는 백업포수로도 경기에 출전했던 그는 비록 그해에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 .302(86타수 26안타 1홈런)를 기록하며 가능성 또한 인정받게 된다.

당시 니혼햄에는 `늙은 슈퍼스타' 한명이 있었는데 그가 다름아닌 1980년대 중 · 후반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쓰(현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였다. 롯데와 주니치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3년간(1994~1996) 요미우리에서 뛰다가 은퇴직전 2년동안 니혼햄에서 몸담았던 오치아이는 1998년 타율 .235 홈런 2개를 쳐내는 것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게 된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대타자의 부재는 일본야구가 늘 그렇듯 `스타와 이슈'에 대한 걱정은 당연했을터. 니혼햄 역시 오치아이의 부재가 마케팅 차원에서는 심각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9년 바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라는 검객의 진가가 발휘되면서 니혼햄의 이러한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이해 오가사와라는 135경기를 소화하며 타율 .285 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음은 물론 25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똑딱이 타자' 라는 인식을 완전히 종식시켜 버린다. 주로 2번타자로 나섰던 오가사와라는 `2번타자는
번트' 에 대한 인식을 홈런포로 바꿔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역시 타격이야기를 빼놓고 지나칠수 없는데 얼마전 필자가 당시 오가사와라의 타격을 유튜브로 본적이 있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헤드업이 없는 교과서적인 스타일의 타격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도 몇번 언급한적 있지만 오가사와라는 야구를 막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은 절대로 따라하면 안되는 모델이다. 지금 오가사와라는 미트포인트 지점에서 고개가 들리는 즉, 타격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치에 어긋난 동작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럼에도 홈런을 쉽게 생산하는것은 백스윙(Take-Back)이 거의 없는(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라고 말하고 싶을정도), 이로인해 그립탑에서 임펙트지점까지 최단거리의 스윙이 가능할만큼 배트스피드가 빠르기 때문이다. 오가사와라가 헛스윙 할때를 보면 헬멧이 벗겨질정도로 배트스피드는 물론 몸의 회전력도 강력한 선수다.(Batting Theory로 넘어갈듯한 느낌이라 이쯤에서 자제)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콧수염이 멋진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아무튼 당시의 오가사와라는 아주 정교하면서도 파워까지 보충된 중장거리 유형의 타자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데 2000~2003 4년연속 30홈런(2000-31개, 2001년-32개, 2002-32개, 2003-31개)을 쳐내며 니혼햄의 대표타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된다. 이 기간 주목할 점은 홈런도 홈런이지만 타율이다.(4년연속 3할 이상) 1996년 입단 기자회견때 `타율왕'을 차지하는게 목표라는 그의 바람대로 2002년-2003년(2002- .340  2003- .360) 2년연속 퍼시픽리그 타율 1위를 차지하게 됨은 물론 안타부분 역시 2000년-2001년 2년연속 1위를 차지하며 1루수부분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다. 2003년은 1루에서 3루로 포지션을 옮긴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달릴것 같았던 오가사와라도 역시 부상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다.

2004년 7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사회인야구 출신 선수중 첫 1,000안타를 달성한 오가사와라는(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1,000안타는 김성한) 그해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시즌 후반 골절부상을 당하며 18홈런에 머물고 만다.
야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필요없는 것이지만 당시 부상만 없었다면 작년시즌까지 9년연속 30홈런이란 엄청난 포스를 이어갈수 있었을텐데 상당히 아쉽다.

2005년 그는 한시즌 개인 최다인 37개의 홈런 쏘아올리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는데 이듬해인 2006년은 그의 야구인생에서 결코 잊을수 없는 한해로 기억되어 진다. 시즌 전 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로 참가해 맹타를 휘두르며 멋진 콧수염을 휘날렸음은 물론(요즘은 왜 수염을 안기르는지 모르겠다) 특히 쿠바와 격돌한 결승전에서 팀의 리드를 이어가는 3타점을 올리며 일본이 초대 챔피언에 오를수 있는 역할을 다해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해에 오가사와라는 32개의 홈런과 100타점을 쓸어담으며 개인 첫 2관왕을 차지한다. 또한 이해에 니혼햄은 44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이란 위업을 달성했음은 물론 퍼시픽리그 MVP도 오가사와라의 차지가 된다. 그야말로 오가사와라에 의한 오가사와라를 위한 그리고 오가사와라 라는 개인이 제패해버린 한시즌이었다. 시즌 후 열린 미-일 올스타전도 당연히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니혼햄과의 인연도 2006년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다. 시즌 후 FA 권리를 행사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리그를 옮긴 오가사와라는 우리의 이승엽과 O-L 포를 이루며 맹활약을 펼치는데 요미우리가 2002년(일본시리즈 우승) 이후 5년만에 리그 우승을 되찾는데 충추적인 역할을 했다.
타율 .313 홈런 31개를 터트리며 자신의 평균적인(?) 기록을 남긴 그는 뜻밖에(?)에도 센트럴리그 MVP의 영예까지 안게 되는데 2006년에 이어 2년연속 수상이었다. 양리그에서 2년연속 MVP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2번째 있는 일이다.


                          [걸리면 넘어간다. 미스터 풀스윙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작년시즌 초반 오가사와라는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연습부족으로 출발부터 좋지 못했다.
알렉스 라미레즈의 가세로 최강타선이라던 평가가 무색할만큼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부진했는데 그의 동료인 이승엽은 2군행, 아베 신노스케와 타카하시 요시노부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까지 했었다.
오가사와라 역시 6월 전까지는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렸음은 물론이다. 결국 8월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탈락, 그리고 1999년부터 이어온 9년연속 올스타전 출전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6월초를 깃점으로 그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선두 한신과 13게임차까지 뒤져 2년연속 리그우승이 힘들었던 시기, 아베와 이승엽,그리고 라미레즈와 동반으로 대포질에 동참. 팀이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12연승을 거두는데 있어 중추적인 활약을 펼친다.
결국 요미우리는 이들의 활약을 발판삼아 2년연속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틀을 수성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3승 4패로 패하고 말았는데 이승엽의 부진 그리고 오가사와라 역시(손목에 공을 맞는 부상여파)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요미우리로서는 그리고 오가사와라 역시 막판이 좋지 못했던 안타까운 시즌으로 기억될듯 싶다.
다음달에 열리는 WBC 일본대표팀에 뽑힌 그는 일본프로야구 통산 타율 4위(.318)에 올라와 있을정도로 정교함을 자랑하는 선수다. 홈런 역시 306개를 쳐낼 정도로 파워까지 겸비했다.


일부 팬들은 오가사와라의 스윙을 보고 이런말들을 하곤 한다. `아주 무식한 풀배팅' `인정사정 없는 극단의 스윙' 이라고 말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타격분석 시간에 필자가 말했다시피 가장 정교한 hitting mechanic 를 가진 타자가 오가사와라다. 아주 느린 프레임, 혹은 늦은 타격연속동작으로 보면 얼마나 훌륭한 타격폼을 가진 선수인지 알수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나이로 37살이 되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그의 전성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호쾌한 스윙만큼은 오랫동안 보고 싶은게 필자의 솔직한 바람이다.


사진/ 일본야구기구 & 요미우리 자이언츠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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