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영점사격’ 이란걸 해봤을 것이다. 이것은 눈과 총이 일치되는 즉, 자신의 총이 내 몸과 같아지게끔 거쳐야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영점이 잡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원하는 목표점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명중하는 사격술이 익혀지게 된다. 반대로 아무리 명사수라 해도 이 ‘영점’이 잡혀져 있지 않으면 백날 총을 쏴봐야 헛것이다.
박찬호(오릭스)가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난타를 당했다. 5일(나고야돔)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원정 시범경기에 등판한 박찬호는 4이닝동안 5실점(3점홈런 포함, 7피안타 2볼넷)을 허용하며 아쉬움을 샀다.
출발은 상큼했다. 1회말 주니치가 자랑하는 테이블 세터인 아라키 마사히로와 이바타 카즈히로를 내야땅볼로 잡은 후 3번타자 모리노 마사히코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4번 와다 카즈히로를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2회말에 연속안타를 맞고 첫 실점을 허용했다. 외국인 타자 조엘 구스만과 토니 블랑코에게 연속안타를 맞은 후 오시마 요헤이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이후 마쓰이 유스케와 아라키,이바타를 연속 범타로 처리하며 이닝을 끝마쳤는데 우려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실점후 심리적 위기를 잘 넘긴 승부였다.
하지만 박찬호는 3회말 2사까지 잘 잡은 후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2회에 이어 또다시 구스만과 블랑코에게 안타를 허용한 박찬호는 오시마에게 적시타 그리고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에게 좌월 3점홈런을 얻어맞는다. 이후 4회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첫 경기를 마무리 한 박찬호는 아쉬움, 그리고 숙제를 안겨준 소중한 경험을 체험하며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 구종 테스트와 스트라이크 존을 시험한 주니치전
아마도 많은 야구팬들은 이번 박찬호의 피칭내용을 보고 실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과 다른 일본의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적응과 감각을 익히기 위한 과정, 그리고 일본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간보기도 있었을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선발과 불펜 투수가 다르듯, 이제부터는 선발로 뛰어야 할 박찬호가 자신의 구종 몇가지를 실험하듯 이걸 피칭에 담아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박찬호가 타니시게에게 3점홈런을 허용한 장면을 보면 초구 컷패스트볼(커터)을 던지다 얻어 맞았다. 박찬호 스스로도 말했듯 그립을 바꿔볼까 해서 변화를 줬는데 실투로 연결됐다고 한다.
박찬호는 슬라이더 그립과 흡사한 커터를 과연 어떠한 형태의 그립으로 바꿔서 던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앞으로 일본에서 써 먹을 구종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아직 더 끌어올려야 할 구속, 그리고 일본타자들의 성향
이날 박찬호의 포심패스트볼 구속은 140km 언저리에 머물렀다. 아직 정규시즌까지 시간이 남아 있기에 지금 정도의 구속을 그때까지 가져갈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박찬호는 이날 경기에서 주로 변화구 위주의 피칭 내용을 보였는데 이것은 포수 이토 히카루의 요구때문이다. 즉 본격적인 자기구속이 나오면 변화구 위력도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뜻과 같다.
경기 후 박찬호는 일본타자 성향에 대한 답변을 ‘주니치 타자들은 변화구를 잘치는 것 같다’ 라고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주니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타자들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풀스윙을 하는 일부 외국인 타자들을 제외하고 일본 토종 선수들은 짧게 치는 타법을 자주 구사한다. 이것은 특히 투수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은 공이 올시 컷트 하는 능력이 돋보이는데 박찬호에게는 큰 경험이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박찬호에게 3점홈런을 터뜨린 타니시게의 타격순간을 보면, 컨택트시 뒷무릎이 굽혀지면서 스윙을 했다. 이것은 히팅포인트를 의식적으로 앞에다 두며 스윙을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즉 떨어지는 변화구는 허리의 리듬감으로 치라는 타격이론에서의 격언을 제대로 실천한, 덧붙여 의식적으로 변화구를 노렸던 것으로도 풀이할수 있다.
환경이 바뀐 만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박찬호다. 그리고 이제 겨우 한경기를 뛰었을뿐이다.
섣부른 낙관도 그리고 불안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경기를 통해 박찬호가 잃은 것보다는 얻은게 더 많았다는 점이다. 지금 박찬호는 ‘영점’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사진/ 산케이스포츠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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