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위의 선수들이 리그를 지배하는 역대 최고급의 선수라고 말하기에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 최장신 선수인 랜디 존슨은 역대 최고의 좌완투수로 꼽히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5번의 사이영상, 4번의 방어율왕, 10번의 올스타 등 그가 이룬 업적은 실로 엄청나다. 그리고 그는 지난 2004년 5월 19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사상 17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기도 했다.
'빅 유닛'이라는 별명답게 존슨은 마운드에서 타자를 압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 위압감은 단순히 큰 신장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95마일 이상의 빠른 직구로 상대 타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우타자의 무릎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칠 수 있는 타이밍을 빼앗는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단 두 가지 구질로 빅리그 마운드를 접수했다. 9번의 탈삼진왕과 통산 탈삼진 역대 3위의 기록은 그의 압도적인 피칭을 증명하는 하나의 자료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도 막지 못했다. 직구의 위력이 서서히 떨어지자 그는 투심패스트볼, 체인지업 그리고 스플리터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비록 최고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타자들에게 위력적인 직구가 유지되던 2004시즌 그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좌완투수라는 자리를 지키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일 당시 애리조나가 그에게 어느 정도의 득점지원만 가능했다면, 로저 클레멘스의 7번째 사이영상 수상은 없던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키스로 이적한 지난해부터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전의 피칭과는 거리가 멀다. 15년만에 이닝보다 적은 삼진을 기록한 지난 시즌 존슨의 모습을 보는 전문가들은 한계가 멀지 않았다는 예상을 서슴치 않았다. 한 경기에 두 개의 홈런을 뽑아낼 정도로 지난 시즌 존슨에게 강한 모습(6타수 4안타 3홈런)을 보여주었던 에두아르도 페레즈는 "그는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라면서 그의 노쇠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시즌 그의 투구는 지난해보다 더욱 파워형 투수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최고구속이 95마일을 상회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평균 직구 구속도 90마일을 조금 넘는 정도에 그친다. 다양한 변화구와 예리한 컨트롤로 상대 타자들을 맞춰잡는 스타일로 완전히 변신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로 그의 투구에는 지난날의 위압감을 느낄 수 없다.
불과 5경기에 불과하지만 그의 9이닝당 삼진율(6.61개)은 통산기록(10.91)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며, 3할이 넘는 피안타율(.311), 5할이 넘는 피장타율(.500) 등도 그가 선수생활을 한 이래로 가장 나쁜 기록이다. 맞춰잡는 컨트롤 위주의 투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명제 중 하나이지만, 현재 그는 땅볼(38)보다 플라이볼(46)의 비중이 더 높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반드시 존슨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올시즌 5번의 선발등판 중에서 한 번 무너졌을 뿐이고,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매우 낮은 수준(0.99)을 유지하고 있다. 토론토전에서의 부진(3.1이닝 9피안타 7실점)을 제외한 그의 기록은 최고 투수의 명성을 유지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4경기 28이닝 6실점 19피안타 21탈삼진 방어율 1.93, 피안타율 .190, 피출루율 .194, 피장타율 .294)
물론 존슨이 지난날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강력한 직구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위력적인 직구를 그가 던질 수 없다고 최고의 자리에서 무조건 내려올 것이라는 판단은 너무 섣부른 것은 아닐까. 19년간의 메이저리그 경험은 타자와의 승부요령을 터득하기에는 충분하며, 그의 제구력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예리하다.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케니 로저스, 알 라이터, 리반 에르난데스 등 생각보다 적지 않은 투수들이 이전의 불같은 강속구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빅리그 타자들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앞의 선수들과 비교해서 존슨은 더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으며, 승부에 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력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또한 갖추고 있다.
"불같은 강속구에 의지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Big Unit'이다"라는 것을 존슨 자신이 스스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하지만,올시즌 4승 2패의 성적을 남기고 다시 허리수술에 들어갔다.벌써 3번째 수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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