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 영구결번(Retired Number)은 단체경기에서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그 등번호를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영구결번에 대한 특정한 룰이 없다.
미국에서는 1939년 7월 4일 루 게릭(뉴욕 양키스)의 등번호 4번이 영구결번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 약 120여명의 선수의 등번호가 각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15번의 영구결번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홈런타자로 손꼽히는 오 사다하루(요미우리)를 비롯해 요미우리 명예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 구로사와 토시오, 그리고 재일교포 김경홍(카네다 마사히치)과 사와무라 에이지, 가와카미 테츠하루(이상 요미우리) ‘미스터 타이거즈’ 무라야마 미노루, 일본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격수로 평가받는 요시다 요시오(이상 한신), 핫토리 쓰구히로, 니시자와 미치오(이상 주니치), 기누가사 사치오, 야마모토 코지(이상 히로시마) 선수로 총 13명이 영구결번인 상태다.
나머지 두번의 영구결번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스의 1번(스즈키 케이지)이 있었는데 구단의 합병으로 소멸됐고, 지바 롯데 마린스가 26번을 팬을 위해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총 11명의 영구결번이 탄생했다. 얼마전 타계한 최동원(11)이 롯데 자이언츠의 최초 영구결번으로 지정됐고 선동열(KIA), 박철순, 김영신(이상 두산), 양준혁, 이만수, 이승엽(은퇴시 영구결번, 이상 삼성), 김용수(LG),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이상 한화)이 영광스런 영구결번의 주인공들이다.
영구결번은 아무나 그 영광을 차지할수 없는 최고의 명예중에 하나다.
76년의 프로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은 지금까지 단 14명(지바 롯데 제외)의 영구결번이 나왔을 뿐이다. 확률적으로 따진다면 모순이 있겠지만 이것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즉 낙타가 바늘을 뚫는 것과 비교될수 있을 정도의 숫자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올해로 30년에 불과(?)한 역사지만 벌써 11명이나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았다. 물론 팬심이 지닌 의미 그리고 현역생활 동안 팬들을 울리고 웃긴 스타 선수들이 은퇴 후 명예로운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11명의 레전드들의 영구결번 역시 납득할만한 이유가 충분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다른 팀 영구결번은 그렇다 하더라도 타이거즈 영구결번은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은 얼마전 KIA 감독으로 취임한 선동열의 18번이 유일무이하다. 선동열 감독이야 현역시절 통산 1.20의 평균자책점이 말해주듯 오히려 영구결번이 아니면 이상할 정도지만 팀 역사를 감안하면 선동열 이외의 선수들도 충분히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익히 많은 팬들이 알고 있다시피 지난해까지 타이거즈는 모두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아직 한번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는 팀도 있고, 해태,삼성,SK,현대를 제외하면 연속시즌 우승을 차지한 팀도 없다. 이것을 원년 팀으로만 한정하더라도 짧은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절대적인 우승횟수다.
그런데 타이거즈는 선동열 하나뿐이다. 타이거즈와 비교될만한 삼성은 3명, 그리고 한화(빙그레)도 3명이나 된다. 우승횟수가 영구결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팀이 지닌 과거 전력, 그리고 그 당시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삼성과 한화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야구는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은 삼성과 한화보다 더 많이 배출됐어야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30년 역사의 한국프로야구에서 11명의 영구결번 숫자도 많은편(일본에 비해)이라고 보지만, 이것 역시 한국만의 정서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떠한 보편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선동열 한명의 영구결번은 그동안 타이거즈 역사를 감안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다.
이만수의 현역 시절의 등번호인 22번은 영구결번이다. 하지만 그와 동갑내기(1958년생)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성한의 11번은 영구결번이 아니다. 이만수가 국내 최초의 100홈런과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1985년)을 달성, 그리고 3년연속 홈런왕(1983-1985)을 차지하며 초창기 홈런타자의 대명사로 군림했기에 자신의 등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만수가 삼성에 있어 이러한 공로와 함께 아직까지도 전설적인 포수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면, 김성한 역시 이만수 못지 않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1982년 투수로서 10승과 타점왕(영원히 깨지지 않을), 국내 최초의 1,000안타 기록, 정규시즌 MVP 2차례(1985,1988), 홈런왕 3차례(1985,1988,1989)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30홈런 타자, 1989 최초의 20(홈런)-20(도루) 클럽 달성, 그리고 제1회 한일슈퍼게임 당시 쏘아올린 3개의 홈런으로 인해 그가 사용했던 방망이는 일본 도쿄돔 야구 박물관에 전시돼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김성한은 이만수가 현역시절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1985년 통합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데 반해, 모두 7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성한이 타이거즈 영구결번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만수와 김성한을 비교하자는게 아니다. 영구결번이란 기준점(그게 뭔지는 모르지만)에 이만수가 들어갔으면 김성한도 충분히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보다 야구역사가 훨씬 오래된 외국의 사례를 감안하면 영광스런 영구결번에 대한 평가는 우후죽순처럼 난립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통산 21번의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며 가장 많은 6명의 영구결번을 탄생시켰듯, 우리나라 역시 가장 많은 통산 10번의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은 선동열 단 한명으론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명문 구단에 걸맞지 않은 부족한 숫자가 아닐수 없다. 신임 선동열 감독에게 이러한 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가능하면 과거 영광을 함께 했던 전설적인 선수들의 영구결번 문제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OB 베어스(두산 전신)의 김영신은 프로 출범 이후 현역선수 가운데 최초의 사망자이자 최초로 자살을 한 선수다. 19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참가했었고 이듬해 프로에 입단했지만 김경문,조범현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그의 등번호 54번은 두산은 물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사진/ KIA 타이거즈 & 드라마 영광의 재인 홈페이지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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