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엔 유독 신인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하더라도 아마와 프로간의 실력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신인왕에 대한 의미부여는 그해에 활약한 루키 선수들중 가장 잘한 선수, 설사 신인왕에 오르지 못한 선수라도 즉시 전력감들이 많았다. 또한 2군제도가 없었던 시절(OB는 1983년부터 2군 운영)이라 기존의 1군선수들과 같이 생활하게돼 지금과 같은 어떠한 차별성도 없었다.
하지만 프로야구 1세대들이 은퇴를 한 후 일본이나 미국에서 코치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선진야구기술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때를 같이해 2군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1군과 2군의 갭차이가 생기게 된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해태(현 KIA)는 선수층이 얇아 주전선수가 부진했을시 2군으로 내려가 몸을 만들고 하는 시스템이 없는 시절이었다. 그냥 아파도 뛰어야 했음은 물론 얇은 선수층만큼이나 부상을 숨기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많이 변했다. 그 세월만큼 한국야구도 기술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젠 신인선수가 프로의 높은 벽을 깨고 주전으로 나선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걸 넘어서 신인왕까지 차지한다는 것은 이미 미래가 보장된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온것이다.
올시즌도 중반을 넘어선 지금, 그래서 `KIA 안치홍'에 대한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이순철 이후 24년, 그리고 안치홍
지금은 MBC-ESPN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순철씨는 1985년 KIA 전신인 해태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광주 동성고(당시 광주상고)를 졸업한 그는 김일권의 대를 잇는 호타준족의 상징으로 성장, 이후 해태가 한국시리즈 4연패(1986~1989)를 차지하는데 있어 불변의 리드오프 역할을 해냈다.
당시에는 보기힘든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타자였고 빠른발을 이용한 외야수비(입단 당시 내야수)력도 발군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수한 자원이 쏟아지는 호남팜을 생각할때 이순철의 등장은 단지 팀내 첫 신인왕을 차지한 선수에 불과했고 그게 당연시 되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 타이거즈는 이순철 이후 단 한명의 신인왕도 배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동안 8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야구를 호령했지만 유독 신인왕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9년 안치홍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고 출신의 안치홍은 2차 1번으로 KIA 유니폼을 입은 후 올시즌 현재(10일)까지 74경기에 출전해 타율 .252 홈런 12개, 타점 29, 도루 8, 출루율 .310, 장타율 .456을 기록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는 평범하다. 올시즌 들어 유독 마운드 높이가 낮아져 있는 타고투저 시즌이란 점을 감안할때 더욱 그러한 느낌이다. 하지만 단지 기록만 가지고는 그의 진가를 논할수 없는게 있다.
바로 사상 4번째 고졸신인 두자리수 홈런기록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이기록을 거쳐간 선수는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13개 홈런을 터뜨린 이승엽(현 요미우리), 1994년 신일고를 졸업한 후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의 한축이었던 21홈런의 김재현(현 SK), 2001년 천안 북일고를 졸업한 후 그해 후반기에만 20개의 홈런을 몰아친 `조선의 4번타자' 김태균(한화) 뿐이다. 이 계보의 전철을 지금 안치홍이 밟고 있는 것이다.
고졸신인 두자리수 홈런은 훗날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모두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에 불과했지만 김재현은 루키시즌에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후 팀의 간판타자로 군림했으며 지금 김태균은 국가대표 4번타자로 성장해 있다. 이승엽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이들의 재림을 안치홍을 통해 엿볼수 있다는 점은 비단 KIA 라는 팀이 아닌 한국프로야구 전체로 봤을때도 반가운 일이다.
물론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고 경쟁자들 역시 안치홍 못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의 신인왕 확정은 속단하긴 이르다. 두산의 중고신인이자 올시즌 마무리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이용찬(18세이브)과 고창성(3승 2패, 9홀드 50.1이닝 평균자책점 1.61) 그리고 홍상삼(7승 2패, 61.2이닝 평균자책점 3.65) 이 세명의 활약은 신인왕 타이틀을 가져갈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용찬이 30세이브 이상을 거둘 경우, 홍상삼이 10승 이상에 지금과 같은 이닝을 꾸준히 먹어준다면 설사 안치홍이 20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올리더라도 신인왕 타이틀은 장담할수 없게 된다. 일본야구 영향으로 타율에 굉장히 민감한 한국프로야구 정서를 감안하면 2할 중반대에 불과한 안치홍의 타율은 안심할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출루율 역시 아직은 부족함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치홍의 신인왕을 고대하는 이유
신인왕 경쟁을 하고 있는 위 선수들이 지금과 같은 페이스를 앞으로도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럴경우 안치홍의 신인왕 타이틀 확률은 여전히 높다고 할수 있다.
안치홍은 타자지만 위의 선수들은 모두 투수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집안에 몰려 있기에 한국시리즈 후 있게될 기자단 투표에서 표가 분산될 확률 역시 높다.
투수는 기본적으로 좋은 공을 가지고 있으면 투수에게 뒤따라오는 기쁨은 동시 다발적으로 챙길수 있는 부분이 많다. 평균자책점은 물론, 탈삼진 등의 기록은 자연스럽게 전리품으로 뽐낼수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타자는 그렇지가 않다.
타격은 에버리지를 위한 선구안, 컨택트(Contact)와 히팅(Hitting)의 차이점에서 뒤 따라오는 타격기술, 신체조건에 따른 타격성향 등이 미치는 영향이 투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고졸 신인타자가 타격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이상을 기다리는 시대가 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이 5년이란 시간도 널뛰기 하듯 1군경기에 출장하는 것이 아닌 어느정도 꾸준한 기회를 줬을때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안치홍은 벌써부터 중장거리형 타자로써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다.
또한 좌우 코너 내,외야수가 아닌 2루수, 팀 상황에 따라 유격수도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타자로써 그리 뛰어나다고 볼수 없는 신체조건(178cm,80kg)에도 불구하고 그의 펀치력은 벌써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마운드에서의 경험과 타석에서의 경험은 한정된 공간에서 도구를 이용해서 해야하는 타격의 본질적인 어려움을 감안할때 안치홍의 희귀성이 훨씬 높다고 볼수 있다.
2000년대 들어와 작년시즌 최형우(삼성)를 제외하곤 모두 투수가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만큼 야수가 신인왕을 차지한다는게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 어려움이란 대형타자 출현이 그만큼 힘들다는 말도 되지만 어떠한 타이틀(홈런,타율,타점,도루)을 신인이 차지한다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도 된다. 그나마 최형우도 중고신인으로써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했었다. 1999년 홍성흔(당시 두산)이 개인 타이틀 없이 타율 .258 홈런 16개, 타점 63, 장타율 .439 로 신인왕을 수상한적이 있는데 앞으로 남은 경기수를 감안할때 현재의 안치홍과 거의 흡사하다. 타고투저 시즌이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안치홍이 좀 더 안정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2푼정도 더 높은 타율, 그리고 20도루는 필수적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젠 투수들이 받는 엄청난 계약금의 한을 타자들도 대우를 받을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투수의 중요성은 진리의 법칙이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타자의 값어치가 저평가되고 있는듯 해 안타까울때가 있다. 안치홍이 고졸신인타자로 신인왕 타이틀을 수상하게 된다면 향후 프로에 입단하게 될 재능있는 야수들에게 희망적이지 않을까. 같은 재능이면 투수를 시켜버리는 아마야구 현실을 꼭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건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사진/ KIA 타이거즈 제공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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