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적인 기본기와 개성이 뜻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다. 하지만 이 두가지의 예문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반드시 기본기가 먼저 오고 개성이 뒤따라 와야 하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성을 논한다는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개성을 지닌 타자에 대한 평가를 할시 가장 간과하게 되는게 “기본기”일지도 모른다. 파란만장했던 하지만 누구보다 위대했던 현역생활을 뒤로한채 양준혁이 은퇴했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양준혁의 은퇴식을 보지 못했다. 그가 은퇴하면 꼭 한번 멋들어진 글로 보답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늦었지만 그동안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그리고 양준혁에 대한 막연하게 생각됐던 부분을 3파트로 나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엉거주춤폼, 만세타법, 심지어는 무당타법이란 말까지. 18년의 현역생활동안 부단히도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을 채찍질 했던 양준혁 타격에 대한 말들이다. 이러한 수식어는 양준혁 특유의 타격스타일에 기인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양준혁의 변신, 그 궁극적 이유는 뭐였을까?
막연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해야 살아 남는다는 소위 위기의식에 기인한 일률적인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항상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처럼 만족을 모르는 투쟁심의 발로였을까. 개인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양준혁이란 야구선수를 논할때 마치 이것이 위대한 타자 양준혁의 전부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양준혁 특유의 타격폼도 종국에는 완벽한 ‘기본기’가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을 간과하며 그의 플레이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양준혁의 참된 경이로움은 개성넘치는 타격폼이 아닌, 그속에 파묻혀 있는 기본기의 출중함이다. 마치 우스꽝 스러운 포장지때문에 그속에 있는 금괴의 가치를 미리 알지 못했다고나 할까?
양준혁이 평생을 거쳐 고민했던 것은 분명 ‘타이밍(Timing)’이었을 것이다. 타격의 원론적인 기술의 교집합은 두말할 필요없이 타이밍이다. 양준혁의 개성넘치는 타격폼도 어찌보면 타이밍을 잡기 위한 나름의 진화였던 셈이다. 타격은 배트를 쥐고 있는 양손으로 하는게 아니라 앞다리로 하는것이다. 투수가 던진 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의 시발점이 앞다리라는 뜻이다. 그럼 양준혁의 앞다리는 어떨까?
우리가 흔히 밸런스가 무너졌다, 혹은 밸런스가 좋다 라고 말하는 것의 속뜻은 스트라이드(Stride)시 내딛는 앞발 착지점에서의 지지대 상태다. 스윙 직전 내딛었던 앞발의 고착 상태에 따라 스윙을 할것인지를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예를 들면 나쁜 공이 왔을시(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 되는) 배트를 휘두르게 되면 앞발은 타자의 몸이 회전하기 전부터 굽어지거나(무릎이 굽혀지거나) 벌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타구에 힘을 싣는게 어렵게 되어 좋은 타구를 생산하기가 힘들어진다.
좋은 선구안은(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선구안이란 세글자는 매우 추상적인 면이 많다) 단순히 공을 바라보며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는게 전부가 아닌 이렇듯 타격기술의 세세한 면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어느정도의 선과 높낮이로 오는 공을 보고 스윙을 할것인지 아니면 멈출것인지는 앞발의 상태(밸런스)의 안정화 유무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행해져야 하는데, 실제로 양준혁은 배트가 자신의 가슴앞쪽까지 이동했다가 급작스럽게 거둬들이며 볼을 골라내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던 타자다. 찰라의 순간적 상황에서 이정도 수준까지 오르기 위해 그가 얼만큼 야구에 대한 노력, 그리고 자기개발에 힘썼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년전쯤 양준혁 타격에 관한 포스팅을 할때의 제목이 →한국의 배리 본즈는 양준혁이었다←다.
당시 포스팅 댓글중에 양준혁도 훌륭한 선수지만 배리 본즈와 비교하기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요? 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본즈와 양준혁을 비교하는 글이 아니다.(분명 이렇게 썼는데도 또 이런 댓글이 남겨질것 같아 두렵다) 각설하고,
양준혁이 왜 위대한 타자인가는 그가 남긴 각종 기록으로만 설명하기엔 너무나 모자르다.
야구에서 일률적인 것은 기본(만) 바탕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무슨 말이냐면, 선수마다 체격조건과 파워 그리고 성향이 모두 제각각이기에 좋은 기본기는 동일하게 습득하는 것이 좋지만 그걸 벗어나면 선수 몸에 맞는 기술의 진일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야구는 선수의 개성을 쉽게 죽여버린다. 선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일부러 끼워맞추려고 하는 천편일률적인 부분들이 많아 융통성을 발휘할 원천적 기회제공을 차단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양준혁이 은퇴식 이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야구를 배워본적이 없다 라고 했다. 곡해하면 매우 건방진 발언일수도 있지만 필자가 지켜본 양준혁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프로데뷔 후 그의 타격변화는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결정했던게 대부분이었고 실제로도 그는 이러한 과정속에서도 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던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양준혁이 프로에 데뷔했을때 무명의 선수(의미는 다르지만 김현수와 같은) 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오기 전에 사장됐을 것은 자명했다고 본다. 독특한 타격자세의 변화를 어떤 지도자가 보고만 있었겠는가?
이러한 의미,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한 대타자들과 비교했을시 양준혁은 메이저리그의 배리 본즈나 베이브 루스의 타격폼과 매우 흡사했다. 이들 역시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타격폼이 매우 특이했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배트를 쥐고 있는 그립위치를 파워포지션으로 가기 직전 가슴쪽까지 이동했다가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빼는 동작을 보노라면 어쩌면 양준혁의 롤모델은 배리 본즈가 아니었을까?
야구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노하우란 경험을 토대로 한다. 야구로만 한정한다면 경험은 이미 거쳐왔던 지나간 일로만 치부하는게 아닌 미래를 미리 내다볼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 경험이 누군가에 의한 주입된 방식이 아닌 스스로의 개발과정을 통해 사고의 진화가 이뤄졌다면 분명 양준혁은 지도자로도 성공할 자질이 넘쳐 흐르고 있다.
이미 양준혁은 작은 변화까지 더하면 수십번의 타격자세를 경험했고 또 그걸 자신의 사이즈와 딱 맞는 옷으로 갈아입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양준혁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몇마디 언급하며 글을 끝마칠까 한다.
누가 나에게 양준혁 은퇴를 바라보며 처음 들었던 생각을 묻는다면 ‘추억’ 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고교 3학년때 동쪽에 ‘괴물타자’가 서쪽엔 ‘야구천재’가 등장했다며 연일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던 추억, 신인타자가 데뷔 첫해 타율 1위를 했던 추억, 뒤뚱뒤뚱 하면서도 열심히 1루까지 내달렸던 추억, 그때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지금은 위풍당당한 풍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봐왔던 추억, 첫정을 줬던 구단의 배신에도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사나이의 일편단심에 감동했던 추억,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면서 다시 돌이켜볼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추억까지..
신(神)은 형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지만, 양神이 보여준 위대함은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 삼성 라이온스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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