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양준혁이 영남대를 졸업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에 2차지명을 거절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 위한 그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자 상무행을 선택했고 군 제대후 "괴물" 이란 수식어를 달며 우리 앞에 나타났을때의 외형적인 공포감은 잊을수 없다.
지금은 워낙 떡대좋은 선수들이 많기에 무감각하지만 1990년대 초반 양준혁을 처음 봤을때의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딱 벌어진 어깨하며 독특한 걸음걸이만큼이나 당당한 체구는 당시 활약했던 선수들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아마 양준혁이 조선시대 머슴으로 태어났다면 안방마님에게 흰쌀밥을 자주 얻어먹었을것이다. 분명 파워히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내포된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질적 느낌이지만 정답이었던 양준혁의 타격동작
개인적으로 당시를 회상해 보면, 앞으로 한국프로야구 홈런왕은 무조건 양준혁의 이름으로 도배가 될줄 알았다.
그건 다름 아닌 그 이질적인 타격자세때문이다. 당시 국내야구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오픈스탠스 하며, 준비자세에서 온몸을 좌우로 심하게 흔들며 배팅 타이밍을 잡는 모습은 흡사 메이저리거들의 모습을 보는듯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양준혁이야말로 일본프로야구 색깔(?)에 물들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한국형 파워히터가 아니였나 싶다.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만 하더라도 국내 타자들의 타격폼은 큰 틀에서보면 독특한 개성이 없는 편이었다.
그나마 해태의 김성한과 롯데 박정태 정도가 독특한 준비자세였을뿐(이 두선수는 세계야구역사에서도 보기힘들듯) 거의 모든 선수들의 타격자세가 스퀘어 스탠스에 기반을 둔 타격준비자세였다.
지금도 잔재(?)가 남아있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지도자들 중 일본에서 현역생활을 했던 분들이 상당수여서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일본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다.
이러한 인식의 보편성을 깨버린 선수가 바로 양준혁이다. 단언할순 없지만 만약에 양준혁이 프로입단해였던 1993년 시즌초반 타격부진에 시달렸다면 필시 그의 타격수정은 뒤따랐을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입단 첫해에 타율 1위(.341)는 물론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신인왕을 차지한다.
처음 배트를 쥔 그립부분이 자신의 가슴높이에서 시작하는 타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타이밍을 잡는 독특한 상체리듬 역시 흔히 볼수 있는 장면이 아니였다. 하지만 양준혁은 여타의 선수들보다 큰 스윙궤적을 가졌지만 짧게 칠때를 알고 있었음은 물론 크게 휘두를줄도 아는 선수임에는 분명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몇번의 타격동작을 수정하긴 했지만 입단 당시와 비교했을때 큰 틀의 범주에서는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 조그만한 변화들(가령,지금의 만세타법)이 지금의 양준혁이 있게한 원동력이 아니였나 싶다. 양준혁, 그자체의 명품 타격동작으로 말이다.
[야구선수로는 최초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양준혁]
우여곡절을 넘어 살아있는 전설이 되기까지
자신의 피색깔은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양준혁에게 1999년은 잊을수 없는 한해로 기억될것이다.
죽을때까지 파란색 저지를 입을줄 알았던 그가 해태 타이거즈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태의 강력한 마무리 투수였던 임창용(현 야쿠르트 스왈로즈)과 맞트레이드가 이뤄졌는데 유니폼을 바꿔입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황두성과 곽채진까지 묶어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것은 정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해태에서 1년을 뛴 양준혁은 1차 선수협 파동때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어 2년을 활약한 이후(2000년,2001년) 당시 김응룡 삼성감독의 부름으로 2002년 고향으로 복귀, 그해에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며 굴곡진 야구인생의 보상을 대신했다. 당시 이승엽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그가 금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통산 341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연습생 신화 장종훈의 벽을 넘어선 역사적인 날이 아닐수 없다. 일부에서는 외국의 홈런신기록과 비교하며 341 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국내 한시즌 경기수를 생각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한시즌 20개 이상의 홈런포를 터뜨렸다는 뜻인데, 양준혁은 홈런타자가 아니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승엽은 2스트라이크에 몰리는, 즉 타자자신에게 불리한 볼카운트일지라도 본연의 풀스윙을 한다.
하지만 양준혁은 상황에 따라 작은것을 때려낼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적은 삼진숫자와 높은 출루율을 보장하는 타자다. 단 한번도 홈런왕을 차지한 적은 없지만 통산 4차례나 타율 1위(1993,1996,1998,2001)에 올랐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단해 몇시즌 반짝 활약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선수를 여러명 봐왔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거기에 맞는 식습관이 중요하듯 야구선수도 신체적 나이가 떨어질때는 그에 맞는 변화와 대처법을 터득해야 남들보다 선수생활을 오래할수 있다. 양준혁은 올해 야구선수라면 황혼기라고 할수 있는 41살이다.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하고 어떻게 몸관리를 해야 하는지 후배선수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양준혁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통산 최다 홈런,최다 안타,최다 2루타,최다 루타,최다 타점,최다 4사구,최다 득점,최다 타수의 8개부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참고로 양준혁 선수는 북미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만든 샘배트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삼성 라이온스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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