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양키스는 영구결번 선수들만 모아도 하나의 드림팀이 완성될수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영구결번이라 함은 은퇴하는 선수의 등번호를 훗날 다른 선수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영구적으로 그 번호를 기리는 일이다. 그럼 야구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은 어떤선수일까.
[양키스 영구결번,좌로부터 루 게릭(4) 베이브 루스(3) 조 디마지오(5) 미키 맨틀(7)]
바로 뉴욕 양키스의 캡틴이자 철인으로 유명한 루 게릭 선수다. 그의 선수시절 백넘버는 4번. 비록 희귀병으로 자신의 모든 기량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은퇴했지만 야구역사상 가장 인상깊은 활약을 남긴 선수중 한명이다.
루 게릭은 처음이란 단어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선수다. 첫 영구결번의 주인공이자 그의 은퇴를 종용한 원인이된 `루게릭 병' 의 이름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례된 병명이기 때문이다.
1923년 뉴욕 양키스에서 빅리그 데뷔를 한 루 게릭은 2년뒤인 1925년 첫 풀타임 주전으로 성장해 1939년 은퇴할때까지 통산 2,164경기에 출전해 2,721개의 안타,홈런 493개 타점 1,995개와 타율 .340의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비록 그가 활약하던 시대에는 같은 팀의 베이브 루스라는 걸출한 홈런타자가 있어 항상 그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팀의 주장으로서 항상 모범적이고 성실한 플레이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다.
특히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는데 1926년-1928년,1932년, 1936년-1938년 포스트시즌 기록을 보면 통산 119타수 43안타 10홈런 타율 .361 장타율은 .731 의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양키스 전성기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였으며 2,130경기 연속출장이라는 철완과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그의 별명이 `아이언 호스' 우리말로 철로 만든 말 처럼 꾸준하고 강한 체력을 보유한 선수였다고 한다.
[베이브 루스(우)와 함께한 루 게릭. 이 사진은 야구 역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사진중 하나다]
그의 일화중 아주 유명한 것은 루 게릭의 골수 팬이었던 한 소년이 소아바미로 병원에 있었는데 재활치료를 거부했었다고 한다. 소년의 부모는 혹시 루 게릭에게 부탁을 하면 자신의 아들이 치로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를 초청했는데 그 자리에서 루 게릭은 소년에게 빨리 치료를 받아서 나으라는 말을 건냈다고 한다. 소년은 오늘 시합에서 홈런을 하나 쳐주면 자신도 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했다.
루 게릭은 그날 경기에서 홈런을 두개나 쳐버렸다. 약속을 지킨것이다. 이후 그 소년이 루 게릭과의 약속을 지켜 재활치료를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타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팬을 위해 병원까지 직접 방문해 어린 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준 사례는 루 게릭의 인간미를 엿볼수 있는 장면이다.
질풍노도와 같은 선수생활을 이어갈 무렵 어느때부터인가 그는 항상 무기력하고 몸이 피곤하며 자신의 컨디션이 저하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결국 2,130경기 출전 신기록을 스스로 중단하며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1939년 7월 4일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은퇴식을 거행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난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라며 팬들과 동료선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의 나이 물과 36살때였다. 그는 은퇴한 이해에 바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루게릭 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은 전염병이란 루머가 나돌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그는 2년 반동안의 투병생활 끝에 39살이라는 한참때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만약 루 게릭이 좀 더 선수생활을 했더라면 500홈런,2,000타점은 물론 스스로 중단한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도 더 이어갔을 것이다. 야구팬들은 칼 립켄 주니어를 철인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철인의 원조는 바로 루 게릭 선수다.
[루 게릭의 묘]
루 게릭을 기억하는 뉴욕의 팬들은 그를 `항상 열심히 그리고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루 게릭이 슬럼프에 빠졌을때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투수들이 때릴수 없는 공을 던진다고 인정할것인가. 그래서는 안된다. 안타를 치지 못한다면 타자에게 잘못이 있다.' 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는 아이러니 하게 루 게릭이 슬럼프에 빠졌을때 했던 인터뷰가 아니다. 바로 그가 인식하지 못하던 병이 서서히 몸을 갉아먹던 1939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서 죽을 각오를 하며 플레이를 한다는,그리고 팬들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프로선수로서 자격이 있다던 그의 철학처럼 어쩌면 그는 자신의 병마저 스스로 싸워 이겨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야구에 대한 정열과 사랑을 꺾지 못한 그는, 그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맞는 말인듯 싶다. 그건 그가 사랑했던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야구 그 자체,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양키스의 `긍지' 그 자체의 의미로 지금 세상에 남긴것이 너무나 많다.
참고로 한국프로야구 각팀의 영구결번은 총 6명으로 KIA 타이거즈(전신 해태)- 18번 선동열, 두산 베어스- 21번 박철순,54번 김영신, 삼성 라이온스-22번 이만수, LG 트윈스- 41번 김용수, 한화 이글스- 35번 장종훈 이다. 최초 영구결번은 1986년 한강에서 투신 자살한 두산의(당시 OB) 김영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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