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글을 쓰다보니 종종 영화 관계자들의 시사회 요청을 받곤 한다.
최근엔 선동열과 최동원의 세기의 대결을 그린 [퍼펙트 게임] VIP 시사회에 초청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단박에 거절했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성장한 야구 인기에 힘입어 야구 관련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래서?’ 라는 인식이 매우 강한 편이다. 이것은 굳이 영화를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다. 선천적으로 텔레비젼을 거의 보지 않기에 드라마는 물론 인위적인 것들에 대한 시선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할 뿐이다.


‘앗싸리’(요건 사투리일까?) 하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놓고 판단 유무를 결정하는 성격상, 가상의 현실(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을 놓고 짜맞춘듯한 영화나 드라마는 개인 취향에 반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뉴스와 시사 관련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텔레비젼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한가지 이유를 더 참가하자면 드라마 대본을 쓰는 여성작가가 대부분인 현 시대에서 사람들에게 허황된 인식을 심어주는, 그리고 허세와 허영심을 부추기는 국내 드라마의 저질성(재벌 2세의 등장은 물론 불륜은 기본이다)에 질려 버려 보통 사람들이 저녁에 드라마를 보는 시간에 필자는 주로 음악을 듣는 편이다. 각설하고.


개인적인 일로 인해 일본으로 가 아주 살 계획을 가지고 부산으로 건너갔던 이달 초.

떠나기 전날 부산의 모 모텔 케이블을 통해 우연히 “글러브”라는 야구 영화를 접했다. 글러브는 개봉한지 한참이 지난 영화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필자의 뼈속 피는 어쩔수 없는듯 언제 영화가 나왔는지는 생각할 틈도 없이 필자의 시선은 화면속으로 빠져 들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특히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건 충주 성심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충주 성심학교는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팀이다. 언제한번 성심학교에 관한 취재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필자에겐 매우 의미있는 영화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영화 스토리는 LG 최고 투수인 김상남(정재영)이 폭행사건을 일으켜 팬들로부터 퇴출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그의 매니저인 철수(조진웅)가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사건해결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상남은 KBO에 있는 고위층으로부터 잠시 다른곳에 가 있으라는 전갈을 받고 내려간 곳이 바로 충주 성심학교다.


성심학교 야구부는 전국대회 4강이니, 우승이니 하는것 보다 1승을 하는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김상남은 이 팀을 데리고 열심히 훈련시켜 1승을 위해 노력한다는게 전체적인 영화 스토리다.
이제와서 영화 리뷰를 쓰자는 것이 아니기에 대략 이정도로 글러브에 대한 줄거리를 끝마친다.

개인적으로 글러브를 통해 가장 크게 염통을 쫄깃(감동을 받았다는 뜻이다)하게 했던 것은 비록 장애인으로 구성된 팀이지만 이들이 보여준 야구에 대한 열정이다.
언제부터인가 야구는 보는 야구에서 하는 야구로 탈바꿈 되고 있는데 장애가 이들에게 있어 야구를 하는데 결코 불편한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이 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적은 팀원수, 말 대신 수화로 작전을 펼치며 1승을 거두기까지 피땀을 흘리는 이들의 열정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일부에선 억지 감동을 이끌어 낸다는 비판이 있는줄로 알지만 이것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필드에서 펼쳐지는 근본적인 모든 플레이 하나하나에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퀵 모션이 커 쉽게 도루를 허용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포수가 만들어 낸 사인은 결국 1승 직전까지 갔던 군산상고와의 대결에서 패배로 귀결되긴 했지만 이것 역시 야구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유희이자 야구만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영화 내용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외야수들의 플라이볼 처리 문제였다.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수비시 타자가 친 타구음을 듣고 몸이 반응하는 속도가 정상적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날리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할 콜 플레이 미숙으로 외야수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이것은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실질적으로 성심학교 야구부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거리중 하나다. 이것을 영화에서 표현할까? 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극 후반부에 실제로 이러한 사실을 영화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경이로움과 함께 전율이 일어났다. 야구를 알고 영화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야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한다. 108개의 바늘 자국이 선명한 공의 실밥은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가 연상되기도 하며 하나의 안타를 쳐내기 위해 손바닥에 잡힌 물집, 그리고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만큼 피땀을 흘려야 하는지는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하나의 종합예술이자 삶의 축소판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성심학교 야구선수들은 실력유무를 떠나 야구가 지닌 진정한 가치에 가장 근접한 인물들이었다. 은퇴한 칼 립켄 주니어는 “당신이 루 게릭이든, 칼 립켄이든, 조 디마지오이든, 재키 로빈슨이든 또는 글러브를 끼거나 배트를 든 한 어린 소년이든, 당신은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도록 야구라는 경기에 도전을 받는다. 그것이 내가 해온 전부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얼마전 도올 김용옥은 비틀즈 ‘렛 잇비(Let it be)’의 가사가 종교적이며 노자의 무위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해 필자 개인으로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자의 자연사상이 렛 잇 비와 통하는데가 있다는 걸 이제서야 실감을 하고 있지만 결국 ‘렛 잇비’ 라는 것도 알고보면 실천사상이다. 이것을 야구로만 한정을 한다면 결국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선수들의 행위 역시 실천사상이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보는 야구가 지닌 한계점(누구 빼라 넣어라 하는 대부분의 야구팬)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오로지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만 신체적 불리함을 타파해 나가는 이들이야 말로 야구가 지닌 진정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뜬금없이 보게 된 영화 ‘글러브’는 단지 영화가 만들어졌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필자는 야구가 지닌 근본적인 행위(실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야구는 어찌됐든 하는 행위이지 앉아서 비판을 받아야 할 운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때 야구가 지닌 참다운 가치를 느끼게 된다는 소중한 체험을 할수가 있었다. 영화 ‘글러브’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휴먼릴레이션스(humanrelations)가 아니다.





사진/ 영화 글러브 공식 홈페이지 캡처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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