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만수.
2003년 7월3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홈구장인 US 셀룰러필드 에서 미네소타 전을 준비하고 있던 이만수코치는 홈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었다.'축하합니다. 헐크 이만수 영구결번' 이란 문구가 올라오면서 그의 선수시절 프로필과 경력이 떳고 때를 같이해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과 관중들은 `만수 리'를 연호하며 한편의 감동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만수의 영구결번을 주장하던 팬들의 끈질긴 요구에 삼성 구단은 결국 승락을 하게 되었고 고국이 아닌 타향에서 공식 축하를 받은 것이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그였지만,마지막이 좋지 않았던 구단과의 반목이 일순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기록이 탄생했다.그중에는 앞으로 깨질 기록들도 있고 영원히 깨기 힘든 것도 있다.하지만 이만수가 가지고 있는 프로야구 첫안타-첫홈런-첫타점 은 깨질 기록도 아니고 갈아치우는 기록도 아닌 이만수란 이름를 기억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프로원년 멤버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한 이만수는 삼성 라이온스의 간판 타자였다.
포수 라는 힘든 포지션을 맡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장타력과 정교한 타격으로 `삼성' 하면 타격의 팀이라고 일컬어 지던 당시 팀의 선봉장 이었고 포수 미트를 끼고 있을때는 상대 타자들에게 시비(?)를 건다던가,일상 생활 이야기를 건내면서 상대 타자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경기 시작 차임벨이 울리면 마스크를 벗고 야수들을 향해 `삼성 화이팅' 을 외치던 모습,홈런을 친후 그라운드를 돌때는 어린아이 처럼 한손을 번쩍 들며 폴짝폴짝 뛰던 모습을 보며 그를 사랑하지 않을 삼성 팬들이 누가 있었으랴? 이만수는 한국프로야구사 에서 `프렌차이즈 스타'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던 최초의 선수라 감히 말하고 싶다.
1983년 홈런왕과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이만수는 84년 타율 0.340 23홈런 80타점을 기록하며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타율-홈런-타점)을 달성해 2년연속 정규시즌 MVP가 유력했지만 롯데 최동원에게 타이틀을 양보해야 했다.롯데와의 시즌막판 2경기를 통해 일어났던 초유의 기록만들기 사건때문이었다.당시 이만수는 홈런과 타점은 안정권 이었지만 타율부분에서 1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당시 타율 2위는 롯데의 홍문종 선수(0.339)로 이만수와는 불과 1리 차이였다.공교롭게도 롯데와 2연전을 남겨놓았던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이만수를 출장시키지 않고 상대 홍문종에게 2경기동안 9연타석 고의4구를 지시,결국 홍문종을 1리 차이로 따돌리고 타격왕까지 차지하게 한다. 이때 김영덕 감독이 말했던 `비판은 한순간 이지만,기록은 영원하다' 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듬해인 85년에도 이만수는 MVP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 남기고도 타이틀 수상에 실패하게 된다.
타율 0.322 홈런 22개 87타점을 기록했던 이만수는 같은 팀의 장효조가 0.373의 엄청난 고타율을 기록, 당시 기자단 투표에서 표가 분산되는 비운끝에 해태의 김성한(타율 0.333 홈런 22개 75타점)에게 또다시 MVP를 양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인성적에 대한 비운이 계속될 무렵 이만수는 1986년 한국프로야구사에 길이남을 첫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는데 바로 해태의 김봉연을 제치고 통산 첫 100홈런의 주인공이 된것이다.
당시 이 기록이 얼마나 치열하고 관심거리 였냐면,연일 매스컴에서는 이만수와 김봉연에 대한 이야기와 전망을 끊이지 않고 내보냈으며,영호남이 배출한 최고의 홈런타자라는 라이벌 의식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던 팬들의 설전까지, 그야말로 최고의 이슈거리였던 것이다. 97홈런까지 기록했던 김봉연 선수가 사상 첫100홈런 달성에 가장유리했지만 그 이후 침묵을 지키는 사이 이만수가 97홈런을 기록해 타이를 이룬다.이만수가 98호 99호 홈런을 연속쳐내며 앞서 가지만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이만수가 침묵하는 사이 김봉연이 99호 홈런을 기록해 또다시 타이를 이룬다. 과연 누가 먼저 100홈런을 기록하는가에 대한 촉각이 모여질쯤 결국 이만수가 대구구장에서 장외 100홈런을 친다.아이러니 한건 당시 이공을 주운 사람 이름도 이만수 라는 점이다.
이후 이만수는 부동의 삼성 안방마님으로 활약하며 선수로서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지만 그를 발목잡고 있던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우승' 이었다.
선수시절 라이벌 이었던 해태의 김성한은 통산 7번의 우승을 기록했지만,이만수는 85년 전,후기 통합우승(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유일한 시즌) 이외엔 단 한번도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한 것이다.
86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이상윤,선동열,김봉연,김성한 으로 이어지는 초호화멤버 해태와 맞섰지만 믿었던 김시진의 부진과 중요고비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실책으로 라이벌 해태에게 우승 타이틀을 넘겨 주더니,이듬해인 87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팀타율 3할을 기록하며 모든 전문가들이 삼성의 우승을 예상했지만 OB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다 죽어가던 팀을 부활시킨 김성한(해태가 OB 에게 1승2패로 몰리고 있던 4차전에서도 해태는 4-2로 뒤지고 있었다. 9회 타자로 등장한 김성한은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치고도 전력질주,결국 상대 유지훤의 안일한 수비로 살아남아 이후 역전승을 이끌어 냈으며 이 상승세를 몰아 마지막 5차전에서는 이순철의 홈런이 터지며 5차전까지 승리,결국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과 김준환을 막지못해 결국 해태에게 또다시 한국시리즈 패권을 넘겨준다.
[이만수는 안타나 홈런을 치면 가만 있지 않았다.항상 팬들에게 답례하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팀으로서 라이벌 이었던 해태,그리고 선수로서 라이벌 이었던 김성한의 우승을 지켜보던 이만수는 그렇게도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93년 다시 한번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은 정규시즌 MVP 이자 홈런왕을 차지했던 김성래와 괴물신인 양준혁를 앞세워 김성한,선동열의 해태와 맞섰지만 그해 입단한 이종범의 `발'에 내야진을 유린당하며 또다시 분패하고 만다. 당시 삼성은 시리즈 4차전까지 2승1패1무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라 더더욱 아쉬움이 컷었는데, 6차전에서 홈런을 치며 그라운드를 도는 김성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만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갑내기였던 김성한에게 또다시 패배하던 순간이 처절했으리라..
이후 이만수는 삼성의 전성기를 더 이상 맛보지 못하며 97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코치로서 해태의 우승(96,97)에 기여한 김성한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은퇴후 미국으로 건너간 이만수는 고생끝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로 발탁되는 행운을 누리며 2006년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우승을 처음 맛본다.
고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것이다.하지만 그는 삼성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미국에서 습득한 선진야구를 통해 선수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삼성 구단도 긍정적이란 말은 내놓았지만 번번히 거짓말로 들통났고,결국 올시즌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국에서 삼성이 아닌 타팀에서 우승하게 된다.
`이젠 삼성의 이만수는 지우고 싶다' `한국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 `아직도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내뱉은 일련의 말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말을 이해한다.
들어내놓고 `난 삼성으로 가야한다' 라고 하기엔 지금의 현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SK에 있지만 그의 마음속은 아직도 `헐크' 소리로 우렁차 있는 고향으로 향해 있는지도 모른다.아직도 못다한 그의 이야기를 가슴속에 남겨놓은채,그리고 그 사람좋은 웃음과 함께 말이다.
[사실 각팀의 프렌차이즈 스타 한명을 골라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1편에서는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 그리고 2편에서 삼성 라이온스의 이만수 선수를 그리워 해봤는데 제 자신도 응원하는 팀이 있기에 타팀 영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들더군요. 하지만 이만수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리고 이글을 쓰면서 나는 삼성 팬이다 라고 생각하며 썼는데도 글이 잘 나오지 않은것 같습니다. 많은 질타 부탁드립니다.^^ 다음 3편에서는 한화 이글스 연습생 신화에서 홈런왕까지 장종훈 선수를 언급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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