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국사회의 주인은 유태인이다.
금융,정치,매스미디어,문화,영화 등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정도로 이미 미국은 유태인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가 됐다. 오죽 했으며 "세계는 미국이 지배하고, 미국은 유태인이 지배한다" 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새삼스럽지가 않는 표현이다.

그럼 일본야구계를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베이징 올림픽 참패의 충격에서 막 벗어날쯤 일본야구계는 또다른 일로 조그만한 소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8월말,메이저리거인 마쓰이 카즈오(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조부인 마쓰이 지로씨가 화재로 숨졌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문제는 마이니치방송이 같은 사건을 보도하면서 마쓰이 지로 대신 박재윤이란 한국이름을
보도하면서부터다.

당시 2ch(찌질이들의 천국)등에 올라온 일본야구팬들의 반응은 배신감(?)으로 가득찬 분노로 들끊었다. '더러운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마쓰이' 정도는 애교수준이었으며 선수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배설들도 있었다. 그들에겐 "야구선수" 마쓰이가 아닌 "천한 피의 조선인" 에만 그 의미를 부여하며 인신공격성 글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한신 타이거즈의 상징 카네모토 토모아키]


사실 재일교포(북한포함)들이 일본야구판을 휩쓸어 버린지는 오래전부터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기요하라 가즈히로(전 오릭스),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나카무라 노리히로(최근 주니치에서 라쿠텐으로 이적) 아라이 타카히로(한신)등, 주요팀의 간판선수들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선수들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때문에 대놓고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을뿐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격투가 추성훈과 절친한 기요하라는 추성훈의 경기때 세컨으로 등장하며 위용(?)을 과시하기도 한다.
기요하라가 "일본야구의 반쵸(대장)"로 불리우며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면 오늘 소개할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서쪽의 반쵸"라 불리우는 선수다.
한신 타이거즈 4번타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는 한국명 김박성. 오늘 글의 주인공이다.

1968년 히로시마 태생인 카네모토가 처음 야구를 접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때다.
여타의 또래들에 비해 다소 야구에 소질이 없었던 카네모토는 힘든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며 야구를 그만두기를 거듭, 고교졸업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다. 고교시절 야구에 대한 열정에 스스로 불을 지피며 노력했지만 당시 그의 기량은 드래프트에 낄만한 수준이 못되었던 것이다.
고교시절 카네모토는 1년 선배격은 구와타와 기요하라의 PL학원(오사카 가쿠엔고교)이 고시엔대회에서 상종가를 달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때 기요하라의 모습을 구경하러 갔을정도로 엄청난 팬이었다고 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대학(동북복지대학)에 들어간 카네모토는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일취월장의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일본대학 야구선수권에서 3년연속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그는 마지막 기회였던 4학년때 관서대학을 결승에서 물리치며 결국엔 우승을 차지한다. 별볼일(?)없었던 그의 야구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우승이었다.

1992년 고향팀인 히로시마 도요카프에 입단한 카네모토는 탄탄대로를 달릴것 같던 기대와는 달리 공격과 수비 모든면에서 함량미달이란 평가를 받는다.
필자가 일전에 한번 언급했던 현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인 오치아이 히로미쓰와 같은 경우다.
오치아이는 아마시절 일명 "백도어 스윙" 이라고 불리울만큼 테이크 백이 큰 선수였다. 아마투수들과 비교해 수준부터가 다른 프로투수들이 그의 약점을 모를리 없었고 결국 2년간 타격폼을 수술한 끝에 프로에 적응할수 있었다. 스스로 타격폼을 뜯어고치며, 각고의 노력을 펼친 그는 결국 1980년대를 대표하는 대타자 반열에 올라서며 한시대를 풍미했다.


         [카네모토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야구실력 외에 뛰어난 인품과 겸손함이 아닐까]


카네모토의 프로초년병 시절도 마찬가지다. 하체를 이용하지 못하는 타격폼, 그리고 부정확한 송구능력은 외야수로서 매리트가 없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당시 관련자료를 찾아보니 그때 카네모토의 별명이 '두더지 죽이기' 였다고 한다. 송구만 하면 어깨에 힘만 들어가 공을 땅바닥에 패대기쳤기 때문)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한 그는 이후 하체의 근력강화와 타격시 하체를 이용하는 방법에 온 힘을 쏟았다.
여유가 없어서 급하게 송구를 하는 버릇까지 고치며 드디어 1994년부터 주전타자로서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입단 2년동안 총 100타석(4홈런 17안타)에 불과했던 카네모토는 1994년 90(293타석)경기에 출전해 타율 .268 홈런 17개 43타점을 올린다. 1995년에는 베스트나인에까지 뽑히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1996-1997 2년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1997년에는 첫 30홈런(33개)를 쏘아올리며 히로시마의 5번타자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2000년에는 팀의 4번타자였던 에토 아키라가 요미우리로 이적하자 자연스럽게 4번타자를 물려받는데, 이해에 생애 처음으로 30-30클럽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1,002 타석 연속 무병살타의 일본신기록까지 작성한 그는 공수주 3박자는 물론 찬스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타자로 우뚝서게 된다.

2002년을 끝으로 FA가 된 카네모토는 재정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히로시마 구단을 떠나게 된다. FA 권리행사를 포기하라고까지 압박한 구단의 처사에 이미 그의 자존심은 상할만큼 상했을터.  잔류냐 이적이냐의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카네모토는 한신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게된다.
이적 첫해 카네모토는 타율 .289 홈런 19개 77타점을 정규시즌에 기록하며 한신이 1985년 이후 18년만에 리그우승을 차지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해냈다. 비록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게 일본시리즈 패권(3승 4패)을 내주긴 했지만 3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총 4개의 일본시리즈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4년 생애 첫 타점왕(113)에 오른 그는 여세를 몰아 2005년에는 센트럴리그 최우수선수(MVP)상까지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에 등극한다.
자신의 한시즌 최고인 타율(.327)과 홈런(40개), 타점(125타점)은 물론 장타율 .615 과 OPS(.1.044)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카네모토는 올시즌까지 통산 2,042경기에 출전해 7,340타수 2,151안타 타율 .293 홈런 421개 타점 1,324 출루율 .395 장타율 .526 OPS .933를 기록하고 있다.


                          [옆집 아저씨처럼 포근한 인상의 카네모토 토모아키]


카네모토를 떠올릴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게 연속경기 무교체출전(풀이닝)이다.
올시즌이 끝난 지금까지 그는 1,330경기 연속 풀이닝 출전(1999년 7월 21일~ ) 은 물론 1,475경기 연속출전(1998년 7월 10일 ~ )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기록참조: 일본야구기구>
미국에 칼 립켄 주니어란 철완이 있었다면 카네모토의 이 기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42세인 그의 체력과 투혼이 경이로울 정도다.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언젠가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 내몸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를 지금까지 있게 한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라고.
여타의 재일교포들에서 볼수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존재를 들어내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었던 고교시절 당대 최고의 고시엔 스타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동경했던 것은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이 두사람은 아직도 돈독한 친분을 과시한다고 한다.

한신 타이거즈의 영구결번들인  후지무라 후미오,무라야마 미노루,요시무라 요시오 그리고 언젠가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될 카네모토 토모아키.
그는 일본선수중에 최고의 연봉(5억 5천만엔)을 받을자격이 충분한 선수다. 아직 다 써내려가지 못한 전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진/ 한신 타이거즈 카네모토 토모아키 팬사이트


윤석구 (http://hitting.kr

저작자 표시
위의 포스트가 유익하셨나요? 그럼 view on 추천버튼을 눌러주세요^^
편하게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한 RSS 리더기를 사용해 보세요.
◀ Prev 1  ... 859 860 861 862 863 864 865 866 867  ... 1250  Next ▶
BLOG main image
윤석구의 야구세상
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해라. 뭐가 그리 급할까. 자기 이름도 구라였어. ㅎㅎ 그냥 인생 자체가 구라인거야? 당분간 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하고 있길.. 차라리 연기자의 길을 걷지 그래..푸하하
by 윤석구

공지사항

2010 view블로거대상 엠블럼 2011 blogawards emblem hobby & free time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50)
Korea Baseball (309)
MLB * NPB (160)
Batting Theory (211)
서울신문 (443)
Baseball N` Sports (51)
야구와 미디어 그리고 나 (74)
  • 5,769,363
  • 971,423
  • http://file.tattermedia.com/media/image/plugin/tnm_badge_white.gif
    Tatter & Media textcube get rss

    윤석구의 야구세상

    윤석구'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윤석구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윤석구'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