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첫 "30홈런"시대를 연 주인공은 김성한(해태 타이거즈)이다. 프로 초창기 이만수와 김봉연으로 양분됐던 20홈런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1988년의 이 기록은 나름의 상징성과 의미가 컸었다.
한시즌 경기수가 108경기에 불과했던, 그리고 지금처럼 투수분업화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라 마운드높이가 타자들에 비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김성한의 30홈런이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그로부터 정확히 4년후인 1992년,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41홈런)의 손에 의해 깨지고 만다. 1991년에 홈런 36개를 쳐내며 이미 김성한의 기록을 넘어선바 있던 장종훈이 첫 "40홈런" 시대를 연것이다.
이때 전문가들은 김성한의 30홈런에서 한술 더떠 " 장종훈의 41홈런은 장종훈 본인이 아니면 절대로 깨기 힘든 기록" 이라며 못박았다. 전문가들의 이말은 이후 90년대 중반을 떠올리면 그럴만도 했다. 1993년 재기에 성공한 김성래(당시 삼성)가 홈런 28개,1994년 쌍방울의 김기태(홈런 25개), 1995년 김상호(당시 OB,홈런 25개)가 각각 홈런왕을 차지하며 오히려 홈런갯수가 이전보다 후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종훈의 41홈런도 결국은 타이론 우즈(당시 OB)에 의해 깨지고 만다. 국내에 첫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된 1998년 우즈는 전년도 홈런왕인 이승엽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막판 역전에 성공, 42개 홈런을 쳐내며 홈런왕은 물론 한시즌 최다홈런기록까지 세우게된다. 장종훈의 기록을 정확히 6년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하지만 우즈가 때려낸 42개 홈런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이듬해인 1999년 이승엽이 54개의 홈런 쳐내면서 국내프로야구 사상 첫 "50홈런" 시대를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전년도 우즈에게 당한 복수를 넘어 한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된 한해였다. 이후 이승엽은 불과 4년만인 2003년에 기여코 56개까지 홈런숫자를 늘리며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보유하고 있던 한시즌 아시아홈런(55개)신기록까지 경신하게 된다. 한국프로야구가 태동한지 올해로 27년째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출발한 메이저리그(133년)나 일본프로야구(73년)의 역사를 감안할때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이 이처럼 짧은 기간동안 자주 바뀌어 왔다는 것도 어찌보면 흔치 않는 일일것이다. 우리보다 야구역사가 훨씬 오래된 일본은 44년째 이 기록을 아직까지도 꾸준히(?)유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심에는 오 사다하루가 있다. 22년간의 선수생활(1959-1980년)동안 그의 손에 의해 작성된 기록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기조차 귀찮을 정도로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대략적으로 핵심적인 것만 살펴 보면,통산홈런 세계1위(868개),일본프로야구 한시즌 최다홈런(1964년,55개),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 2연패(1973년-1974년), 타율 1위 5회,홈런왕 15회,타점왕 13회, 베스트 나인 18년연속(1962년-1979년),골든글러브 9년연속(1972년-1980년), 센트럴리그 MVP 9회수상 등이다.
오 사다하루가 보유한 부분별 기록을 보면 홈런을 제외하고도 얼마든지 더 찾을수가 있다.
역대 통산 출루율 1위(.446) 장타율 1위(.634) OPS 1위(1.080) 최다 4사구 1위(2,817) 최다타점 1위(2,170) 최다득점 1위(1,967) 최다루타 1위(5,862)등이다. <기록참조 : 일본야구기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오 사다하루는 그의 동료였던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종신명예감독)가 "미스터 자이언츠" 라면 그는 "미스터 일본베이스볼" 라 불리울만큼 이견이 없는 최고의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전설인 행크 아론과 조우한 오 사다하루]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가며 통산성적을 내밀기까지는 대단한 실력못지 않게 몸관리도 중요하다.
한때 행크 아론이 보유하고 있던 홈런신기록을 유일하게 돌파할것으로 예상됐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부상때문에 선수말년이 초라해 보이는것도 이때문이다. 하지만 단일시즌 최다홈런은 그 모양새가 그것과는 다르다. 홈런맛을 알고 있는 슬러거들이라면 어찌됐던 한시즌 홈런신기록을 향해 누구나 도전할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오 사다하루가 1964년에 작성한 55홈런이 좀처럼 깨지지 않고 있다.
무려 44년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 기록에 도전했던 선수들이 없었던건 아니였다. 1985년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즈,홈런 54개)와 2001년 터피 로즈(당시 긴테쓰,홈런 55개)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당시 세이부,55개)가 모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석연치 않는 방해공작으로 모두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오 사다하루와 한시즌 최다홈런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로즈와 카브레라는 물론 바스 역시 인위적인 방해작전으로 신기록을 놓친 억울한 케이스였던 셈이다.
1985년 오 사다하루가 요미우리 감독으로 있을 당시 바스와 상대하는 요미우리 투수들은 정면승부를 펼치지 않았다. 오 사다하루의 지시에 의한것인지(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니면 그를 존경하는 요미우리 코칭스탭들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던 바스의 신경에 거슬렸던 것은 당연했다. 바스가 오죽했으면 타석에서 방망이를 거꾸로 들며 상대투수를 비웃었겠는가. 보지는 못했지만 눈앞에 선하다.
터피 로즈 역시 바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1년 로즈는 당시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있던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경기에서 상대 투수들이 집중적으로 견제하며 볼넷으로 자신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 막판에 이르러서는 신기록 저지를 위해 눈에 보일정도로 로즈를 상대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에서도 활약한바 있는 로즈는 2005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 포수 머리위를 지나 백네트까지 날아간 공이였는데도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해버렸다."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가 살아남으려면 실력외적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2001년 로즈는 세이부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보스턴)에게 55호 홈런을 쳐낸 이후 다이에와의 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 단 한번도 배트를 휘둘러 보지 못한채 시즌을 끝맞쳐야 했다.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알렉스 카브레라]
알렉스 카브레라는 로즈보다 더 억울한 선수다.
지금은 로즈와 함께 오릭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카브레라는 2002년 세이부에서 뛸 당시 엄청난 홈런페이스를 선보였는데 50홈런이 터졌을때 세이부의 남은 경기수가 무려 22경기였다.
카브레라는 괴력의 파워를 과시하기로 유명한 선수인데 세이부돔 천장을 강타하는 추정비거리 180미터짜리 타구를 날린적도 있을 정도다. 카브레라가 55호홈런을 기록할 당시 남은 경기수는 5경기.
하지만 그역시 로즈와 마찬가지로 그걸로 끝이었으며 말한마디 잘못해서(홈런신기록을 깨고 싶다. 라는 말이 잘못된 표현일까.) 엄청난 사구를 얻어 맞아야 했다.
2002년 당시 마쓰이 히데키(현 양키스)도 센트럴리그에서 연일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기록경신을 노렸지만 홈런 50개에 만족해야 했다. 만약 마쓰이가 좀더 힘을 내 시즌 막판쯤 홈런이 55개에 가까웠다면 과연 그에게도 두 외국인선수처럼 상대했을지 의문스럽다.
과거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한바 있는 선동열 감독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 충분히 주심의 손이 올라갈만한 코스에 공이 들어와도 마쓰이가 치지 않으면 무조건 볼 " 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일본내에서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어떠한 룰이 암묵적으로 행해 지고 있는듯 하다.
특히,특정 기록달성 여부가 외국인 선수 손에 달려있다거나, 일본야구 역사에서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는 이들의 기록에 도전하는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비록 리그는 달랐지만 2003년에 이승엽이 갈아치운 아시아홈런 신기록은 가까운 시기에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보기가 힘들듯 싶다. 위의 사례처럼 외국인선수에게 특정 신기록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엽의 아시아홈런신기록도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못할 일이다.(만약 이승엽이 요미우리를 떠나는 날에는 더욱더 노골적일수도 있다)
리그가 다르는점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을 한수아래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존심상, 아직까지 한시즌 아시아홈런 신기록은 오 사다하루뿐이다.전도유망한 젊은 선수들중 요코하마의 무라타와,요시무라를 제외하곤 이 기록을 당장에 갈아치울 선수는 없다는게 개인적인 평가다. 혹여 이들에 앞서 다른 외국인 선수가 그 기록에 접근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신기록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오 사다하루를 넘는다는 것은 함부로 침범할수 없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사진/ 일본야구기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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