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스즈키 이치로/ ㉧ 로이터]


정말 충격적인 패배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대 일본전에서 한국은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7회 콜드게임패(14-2)를 당했다.
일본은 1회초 1번 이치로부터 3번 아오키까지 연속 3안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연속안타를 맞은 김광현은 4번 무라타와 5번 오가사와라를 연속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한시름을 놓는가 싶더니만 6번 우치카와에게 3루선상 2루타를 얻어 맞으며 단숨에 3-0 스코어를 헌납했다.

곧바로 반격에 나선 한국은 1회말 2번 정근우와 3번 김현수의 연속안타(2루에서 아웃)후 김태균이 마쓰자카에게 좌월 투런홈런을 쏘아올리며 1점차까지 쫓아갔다. 당초 팽팽한 투수전이 예상됐지만 이때만해도 양팀 투수들의 초반 컨디션 난조쯤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한국은 이것으로 오늘경기의 모든것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이후 일본은 2회초 포수 조지마의 안타와 이와무라의 볼넷 이치로의 번트안타로 만든 무사 만루에서 나카지마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한점을 더 도망가더니 아오키의 내야땅볼때 이와무라의 1득점, 4번 무라타의 쓰리런 홈런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단숨에 8-2로 달아나며 김광현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한다.
사실상 무라타의 홈런이 한-일전 승부의 마침표나 다름없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일본타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정현욱에 이어 3회초 마운드에 오른 장원삼은 4회 이치로에게 안타와 도루를 허용 한 이후, 3루수 이대호의 실책으로 한점을 더 헌납하더니 5회에는 조지마의 안타와 이와무라의 볼넷 나카지마에게 2루타까지 허용하며 단숨에 10점째를 허용하고 만다. 아오키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5회초가 끝났을때의 스코어는 11-2. 이젠 콜드게임패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는 그야말로 치욕의 순간이기도 했다.

6회초부터는 선수들 스스로 포기한듯한 플레이의 연속이었다. 바뀐 투수 이재우는 후쿠도메에게 2루타를 허용하며 흔들리더니 폭투(기록상으로만 폭투였지만 포수실책성)로 후쿠도메를 3루까지 보낸 후 조지마에게 투런홈런까지 허용하며 13-2 . 수치스러운 10점 이상차의 스코어를 기여코 헌납한다.
결국 7회초 일본은 나카지마의 2루타 후 아오키에게 스트라이크 낫아웃까지 허용하더니 오가사와라의 1루땅볼때 나카지마가 홈을 밟아 14-2 콜드게임승리를 완성시킨다.

최근 들어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당한 패배중 가장 큰 스코어차이의 경기였으며 9회까지 가보지도 못하며 7회에 콜드게임패를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기결과였다.

                 [2회초 김광현에게 투런 홈런을 쏘아올린 무라타 슈이치/ ㉧ 로이터]


분석당한 김광현, 아쉬웠던 볼배합

1회초부터 일본타자들은 단 한가지 구종만 선택해서 철저하게 노려치는 타격을 했다. 이치로에게 허용한 우전안타는 가운데서 떨어지는 슬라이더, 2번 나카지마 역시 철저하게 페스트볼은 버리고 슬라이더만 노려쳐서 연속안타를 만들었으며 아오키의 선취 타점 역시 슬라이더였다. 김광현에게 아쉬웠던 것은 오늘 가장 좋은 공은 슬라이더가 아닌 페스트볼의 위력이었다.

1회초에 무라타와 오가사와라 그리고 후쿠도메 이 세명의 선수들을 상대로 3개의 아웃카운트 모두가 삼진이었는데 변화구 승부가 아닌 페스트볼 승부에서 얻어낸 결과였다는 점으로 볼때 볼배합의 문제가 1회부터 우리를 발목잡게 했던 원인중 하나였다. 한국이 패했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이 일본전을 맞이할때 "언더독" 이란 생각을 가지고 게임에 임할때와 대등한 상대국이라 평가하며 붙었을때의 차이점으로 해석하고 싶다.


하라 감독의 선수기용이 맞아 떨어진 승리

일본은 이번 대결에서 스타팅멤버의 변화를 줘 한국전에 대비했는데 100% 적중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중국전에서 4번을 맡았던 이나바 아츠노리(니혼햄 파이터스)를 빼고 그자리에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6번에는 작년시즌 센트럴리그 타율 1위(.378)인 우치카와 세이치(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집어넣는데 1회초 우치카와의 적시 2타점, 2회초 무라타의 2경기 연속 홈런(쓰리런). 이 두명의 선수들의 활약으로 승부를 초반에 결정짓게 했다.

당초 중국전에서 홈런을 쳐낸 무라타의 4번기용은 필자도 일-중 전이 끝나고 예상했었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전무한 우치카와의 한국전 선발출전은 전혀 예상조차 못한 일이었기에 충격이 더 크다.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린 한-일 양국의 테이블 세터진들

1번 이치로는 이날 5타수 3안타(1도루)를 기록했는데 3안타가 모두 승패를 결정짓던 경기 초반에 몰아친 안타다. 특히 두번째 타석에서 기습적으로 성공시킨 번트안타는 얄미울 정도.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4회초에는 안타를 치고나가 도루까지 성공하더니 이대호의 실책때 홈까지 밟았다.
2번 나카지마의 활약도 대단했다. 4타수 3안타(2루타 2개) 1볼넷.  나카지마는 끈질긴 승부로 경기초반 김광현을 가장 많이 괴롭힌 타자중 한명이다.

반면 한국은 이종욱이 3타수 무안타, 2번 정근우 역시 3타수 1안타에 그치며 출루후 기동력을 볼 기회마저 잃게해 밥상을 전혀 차리지 못했음은 물론 일본과의 비교우위에서도 여실한 차이를 보여줬다.


무라타 슈이치의 홈런은 예견된 홈런

필자가 타격이론가이기에 자신있게 할수 있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타구가 자주 나오면 큰것 한방을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Batting Theory 카테고리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특히 페스트볼을 백네트 뒤쪽으로 파울을 날리면 서서히 배팅타이밍이 맞아가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투수는 무엇보다 좌우 코너웍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끈질기에 파울타구를 만들어내더니 결국엔 승부를 결정짓는 쓰리런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만약 월요일에 다시한번 한-일전이 벌어질시 어떤 투수가 나올지는 몰라도 우투수라면 2스트라이크 이후엔 바깥쪽 슬라이더가 무라타를 상대로는 처방약이다. 사실 필자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센트럴리그 홈런왕 2연패를 한 정말로 우직한 무라타의 타격기술이 더 뛰어났다는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기백이 없었던 공격 그리고 수비

경기초반부터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한국은 공격과 수비에서 평소의 모습들이 아니었다.
일본 선발로 나온 마쓰자카의 공은 과거 우리가 상대했던 그 마쓰자카의 구위가 분명 아니였을뿐만 아니라 1회초에는 변화구 제구력도 좋은 상태가 아니였다. 결과론적이지만 초반에 그를 무너뜨려야 했는데 일본은 됐고 한국은 그러질 못했다.

수비도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진듯한 모습이었다. 7회 아오키를 낫아웃 상태로 만들어준것은 폭투라고 하지만 강민호가 그정도 공은 받아줬어야 했다. 6회 조지마의 홈런이 터지전에 나온 폭투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게 빌미가 돼 홈런까지 얻어맞으며 스스로 주저앉은 무기력함을 나타냈다. 경기 후반 일본이 쉽게 점수를 뽑아낸것도 한국 수비가 그만큼 부실했고 안일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3루수 이대호 문제는 김인식 감독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예상된다.


WBC가 열리전만 해도 일본의 무라타 대타기용설이 유력했던 것은 공격력에 비해 처지는 수비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라타는 중국전에 이어 한국전마저 맹타를 휘두르며 그걸 상쇄시켜 버렸다. 하지만 정말로 기대가 컸던 이대호의 일본전 타격은 아쉬움이 많았다는 점. 혹여 다음 일본전에서도 3루로 출전한다면 금일 무라타 이상의 공격력을 보여줘야 한다. 4회초 나카지마 타구의 바운드 미스 실책은 점수차가 이미 벌어졌기에 묻혔지만 만약 박빙의 한점차 승부였다면 위험한 순간이었음을 이대호 스스로도 잘 깨우쳤으리라고 믿는다.


            [1회말 일본 선발 마쓰자카에게 좌월 투런홈런을 터트린 김태균/ ㉧ 로이터]


여전했던 김현수와 김태균

김현수는 3타석 2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는데 6회 마지막 타석에서 비록 아웃이 되긴 했지만 잘 맞은 타구가 잡힌 것이다. 그의 타격감각은 여전했다.

김태균도 만세 홈런을 터트리며 초반 한국이 잠깐이나마 희망을 가질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지만 야구는 혼자만 잘해서는 이길수가 없는것. 만약 팽팽한 흐름속에 한-일전이 벌어졌다면 이번 경기의 히어로가 될수도 있었을텐데 본인도 아쉬웠을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도쿄돔 외야석 광고판을 다이렉트로 때려버린 추정 비거리 140m 홈런은 정말로 멋진 대형홈런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 신나고 그래야 쓸맛이 날텐데 이런 패배를 당한 후 경기평가를 한다는건 고욕스러운 일이다. 사실 일본이 생각 이상으로 잘했으며 일본 타선이 무섭도록 폭발한것도 맞는 말이지만 너무나 무기력했던 경기중반 이후의 우리 플레이는 지적 당할만 하다. 이런 패배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내일 중국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월요일에 다시한번 일본과 조 1위를 놓고 격돌한다.
비록 중국이 대만을 꺾었다고는 하나 분명 한수 아래인것만은 사실이기에 오늘 패배의 의기소침함을 버리고 중국전에 임했으면 싶다. 그래야 다음 복수를 꿈꿀수 있을테니 말이다.
덧붙여 김광현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지난 올림픽때와 오늘 경기까지를 모두 합하면 2승(1경기는 기록상 승패가 없지만) 1패를 했을뿐이다. 야구를 하다보면 잘될때도 있고 오늘과 같은 치욕을 맛볼때도 있다.
기죽지 말고 힘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넌 아직 젊으니까.



사진/ 로이터

윤석구(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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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괴벨스와 같은 인간이 있다. 다만 남자가 아니라는 것만 다를뿐...사람들의 인지부조화가 만들어 낸 희대의 괴물이지.. 뭐 그렇다고.. KCN 야구해설위원 & 광주 MBC-R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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