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LA 다저스(6월 6일)전에서 통산 500세이브를 기록한 트레버 호프만(샌디에고 파드레스)은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로저다.
하지만 이런 호프만이 애리조나 대학시절 정교한 타격솜씨와 강한 어깨의 장점때문에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 야구를 시작했다는 점은(유격수)은 다소 의외일 것이다.그의 선천적으로 약한 체력(그의 나이 6살때 혈액응고라는 지병으로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은 그가 여타 선수들보다 뛰어난 방망이 실력을(대학시절 0.371의 고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투수로 전향해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 이였는지도 모른다.
1991년 신시네티 레즈 마이너시절 당시 팀의 감독이였던 짐 렛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이듬해 더블A 에서 47.2이닝을 던져 1.89의 자책점과 75개의 탈삼진의 기록을 거둠으로서 ,클로저로서 대성할 소질을 선보이게 된다.
1993년 샌디에고 파드레스에서 첫 빅리그를 시작한 호프만은 같은해 플로리다로 이적하지만,1993년 시즌이 끝나고 당시 샌디에고에서 뛰던 게리 쉐필드와 유니폼을 갈아 입게 된다.
호프만 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체인지업'이다.
물론 이시절 99마일에 이르는 강한 페스트볼,명품 슬라이더와 컷터,투심 그리고 빠른 파워커브까지 보유한 투수였지만 부상으로(오른팔 회선건판 수술)인해 구속 저하의 대항마로 익힌 구질이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 기간은 이런 호프만에게는 행운의 한해였다.
오른팔 수술이후 충분한 회복기간을 가졌으며,또한 `체인지업'을 연마하는 소중한 한해 였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단 한차례 시즌을 제외하곤(2003년 부상) 40세이브 이상을 거두었으며 1994년부터 올시즌 동안 514세이브 자책점 2.71 탈삼진 851개를 기록했다.(1993년 10세이브)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2번의 부상과 싸우면서 그리고 자신의 가장 큰 주무기였던 99마일의 페스트볼을 잃고도 이러한 성적을 기록한 것은 그 역시 `노력하는 천재형' 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자들은 이러한 호프만을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와 자주 비교한다.
비록 리베라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호프만보다 월등히 뛰어나고,또한 양키스에서 우승반지를 4개나 끼는 행운(?)을 가진 선수지만,정규시즌에서 만큼은 호프만보다 한수 아래인것만은 분명하다.
올시즌 호프만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게임 이였던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팀 승리를 지켜내지 못했으며,결국 13회 연장까지 가는 혈투끝에 팀이 패배하면서,포스트 시즌이 좌절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샌디에고의 홈경기때 그가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 등판할때마다 울려 퍼지는 AC/DC의 hell`s hell 곡(땡~땡 의 종소리로 시작되다 이후 강렬한 기타사운드로 바뀌는 곡)에서 유례한 `지옥의 종소리'를 올시즌까지 524번이나 울려 퍼지게 했던 호프만은 `500개의 홈런은 모두 팀 승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500개의 세이브는 모두 팀 승리다'라고 할만큼 소중한 기록이며,현대야구에서 클로저가 팀에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감안할때,샌디에고의 수호신으로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선수임이 분명하다.
이글은 인터넷신문 데일리안 기사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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