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김성한을 위한 변명, 조범현감독 훗날 강팀이 되는 초석을 만들어 주길.
요즘 KIA 타이거즈의 성적부진으로 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팀의 수장인 조범현 감독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작전 등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라 글을 쓰는 사람입장에서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먼저 이글을 본격적으로 쓰기전에 한가지 전제를 깔고 시작하련다. 필자는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자 현 MBC ESPN 해설위원으로 있는 김성한의 골수빠다. 야구를 처음 접한 계기도 이사람의 영향이 컸다는것도 무시할수 없고 타이거즈 팬이라면 어릴때 동네야구라도 하면 누구나 한번쯤 김성한의 타격폼을 따라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없을만큼 타이거즈 팬에게는 절대적인 프렌차이즈 스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상징적인 선수였다.
서론이 길어질것 같아 본론으로 들어가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조범현 감독에게 조급증을 주지 말자. KIA는 최근 3년동안 꼴찌만 2번한 팀이다. 이팀이 이런 성적을 올릴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백만스물하나 하고도 몇개가 더 추가할 이유가 있지만 아직 팀 주전선수들이 완벽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첫번째 이유를 들고 싶다. 주전포수 김상훈의 부상과 장성호가 없는 현재의 타선은 7개구단 어느팀과 비교해도 쉽게 승을 올릴수 있는 타선이 아니다. 조범현의 진정한 평가는 이들이 돌아온 이후 성적을 보면서 말해도 늦지 않을것이다. 조범현 감독에게 행운이 깃들길 빌며 KIA가 훗날 강팀이 되는 초석을 깔아줄거라 믿고 싶다.
김응룡 현 삼성 라이온스 사장이 해태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 김성한은 해태의 마지막 감독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해태 말년시절 모구단의 재정악화로 인한 팀 전력누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봐도 상당한 타격이었다. 요즘 젊은층에서 자주 하는 말인 `듣보잡' 선수가 선발타선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선발투수감이 없어 돌려막기식 투수운영을 했었는데 2001년 당시 이미 전성기를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오봉옥과 박충식이 1군에 있을정도였으니 팀이 처해있는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세월이 흐른 지금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과연 어떻게 타이거즈가 부활을 할것이며 또 어떤 선수를 가지고 야구를 할것인지 암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야구단 운영을 할수 없었던 해태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01년 8월1일 새로운 주인인 현 KIA 타이거즈가 팀을 인수하게 된다. 이쯤 일본에 진출해 있던 이종범까지 한국으로 돌아왔음은 물론, 창단 다음날인 8월2일 인천 SK 전을 시작으로 KIA 유니폼을 입고 뛰던 타이거즈 모습이 시작된다.당시 도원구장에는 이종범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인해 암표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실제 필자도 암표를 사서 경기장을 들어간 기억이 있다.
2001년 KIA는 60승 5무 68패를 거두면서 5위라는 믿기 힘든 성적을 기록한다. 이 성적이 왜 믿기가 힘든것이냐면 그 당시 선수 면면을 보면 꼴찌가 당연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 퇴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 2001년 5위의 성적표는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순위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런 작은 희망만 남기고 시작된 2002년 KIA 타이거즈는 그야말로 돌풍의 한시즌을 보내게 된다. 지금도 필자가 또렷하게 기억하는건 시즌전 당시 KBS 해설위원이었던 하일성은 2002년 KIA의 예상순위를 중하위권으로 분류했으며 그의 라이벌인 허구연 MBC 해설위원 역시 하일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은 시즌 초반부터 보기좋게 빗나가는데 삼성에게 시즌 막판 1위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KIA 팀은 페넌트레이스 내내 돌풍이 아닌 강자의 팀이었다.
결국 KIA는 78승 4무 51패(승률 .605) 정규시즌 2위에 기록 했으며 당시 준플레이오프에서 3위팀 현대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올라온 LG 트윈스(66승 6무 61패 승률 .520)와 플레이오프전을 2승3패로 내주고 말았다. 당시 KIA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당시 루키이자 선발투수였던 김진우의 마무리 기용,LG 왼손투수인 류택현이 나왔는데 장성호를 그대로 밀고 갔다는 등등 전문가들보다 일부 팬들이 더 극성이었다.
김성한을 위한 변명 (1)- 과연 김성한의 패착은 무엇이었고 일부 팬들이 주장하는 말이 옳은 것인가?
먼저 당시 가장 논란이 된 4차전 왼손 릴리프로 나왔던 류택현과 장성호의 대결, 그리고 김진우의 마무리 기용에 대한 필자의 의견과 진의를 좀 살펴보자.
많이 쓸것도 없다. 장성호를 상대하기 위해 류택현이 올라왔는데 왜 대타를 쓰지 않았냐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결론은 장성호이기 때문이다. 2002년 장성호는 한국리그 타율 1위의 선수였고 무엇보다 자신이 좌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우스포투수에게 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성호는 좌투수에게 약한 타자가 절대로 아니다.(두산 이혜천 빼고) 그런데 류택현이 올라왔으니 장성호를 빼고 대타를 기용하자??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지만 도대체 그상황에서 장성호 말고 어떤 타자를 대타로 써야 하는지 이런 주장을 했던 팬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주장은 말도 안될 뿐더러 야구를 결과론적으로만 보는 편협한 찌질이 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좌투수가 올라왔으니 장성호를 빼자는 논리부터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김진우의 마무리 기용에 대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2002년 당시 KIA는 전문 마무리 투수가 없었다. 삼성에서 외도를 끝내고 돌아온 이강철과 이미 전성기를 다 보낸 오봉옥 박충식과 같은 투수들이 돌려막기식 땜빵으로 한시즌을 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긴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모르겠지만 한경기 한경기가 중요한 상황에서 김진우를 빼고 뒷문을 믿고 맡길만한 투수가 없었다. 물론 경험이 일천한 김진우의 기용은 실패했지만 당시 팀내에서 구위가 가장 좋았던 투수는 다름아닌 김진우였다. 플레이오프가 다 끝나고 언론에서 나온 첫마디가 `감의 김성한 야구, 데이터 김성근에게 패' 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데이타 야구를 잘한다는 김성근 감독은 왜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61승이었는지 되묻고 싶다. 이 모든것은 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이때부터 김성한의 야구는 `무식한 감의 야구'의 대명사가 돼버린다.
모 언론의 모기자(필자는 또렷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지만 밝히지는 않겠다.언젠가 마주치게 되면 강냉이를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지금까지 나를 분노케 한다)의 그 기사로 인해 아직까지도 김성한의 야구를 무조건 감의 야구라고 착각을 심하게 하고 있는 팬들이 많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 또는 선수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면 찌라시라고 욕하는 팬들이 왜 이말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을까. 그것도 KIA의 일부 팬들이 말이다.
김성한은 감독부임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포스트시즌에서 석패했지만 당시 초짜 감독이란 점을 들어 면죄부 아닌 면죄부가 주어졌었다.
2003 시즌전 KIA는 전년도와는 다르게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삼성과 함께 우승후보 1순위로 뽑힌다.이 당시 KIA는 전문마무리 투수와 한방이 필요한 4번타자의 중요성을 느끼고 정성훈을 현대에 내주고 박재홍을 그리고 진필중을 영입한다. 정성훈은 광주일고 출신으로 장래가 총망한 선수였기에 많은 팬들의 반발이 있었다.더군다나 현금 10억원을 얹어 주고 박재홍을 데려왔으니 그 정도가 심했는데 모든 비난은 김성한 감독몫으로 돌아갔다.(이미 떠난 정단장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당시 일들에 대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예의가 아니라서) 기대대로 KIA는 개막 경기부터 10연승의 질풍노도와 같은 돌풍을 몰고 오는데 그것도 잠시, 시즌 중반부터 기세가 꺾이면서 4강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스타전이 끝나고 후반기 첫 경기였던 광주 SK전(2003.7.19일)에서 행운의 강우콜드승을 거둔 이후 분발하기 시작해 7연승,12연승 을 각각 한차례씩 기록하는등 믿기 힘든 연승을 쌓아가며 78승 5무 50패(승률 .609)로 1위 현대에 불과 승률 2리(.611) 차이로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다. 이 당시가 김성한 야구의 절정기였다.
당시 이적한 박재홍은 기대에 못미치는 타율 .301 홈런 19개를 기록했고(작년 KIA 최다홈런은 장성호의 11개다. 19개 홈런치는 타자가 지금에 와서 부진했다고 하니 정말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진필중 역시 4승4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3.08 을 기록해 만족할만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KIA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명장 김응룡이 버티고 있던 삼성을 깨버리고 무서운 상승세를 올리던 SK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힘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3연패를 하고 당하고 만다. 사실상 김성한 야구의 종말을 고하는 포스트시즌이었다. 당시 믿었던 선발투수였던 다니엘 리오스(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후반기에 합류해 8승 1패를 거둔 마이클 존슨이 무너지면서 대책없는 참담한 시리즈가 되고만 것이다.
2004년 KIA는 진필중을 내보낸다. 그리고 FA 마해영을 삼성에서 데려오는데 박재홍의 손바닥 부상,김진우의 무릎부상 등 시즌초반부터 상당수 주력선수들이 이탈된 상황에서도 4-5위를 왔다갔다 하는 성적을 기록하는데 시즌중 당시 김응룡 삼성감독과 관계가 소원해져 오갈곳 없던 유남호 전감독을 데려오면서부터 김성한의 경질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전반기를 4위로 끝맞친 KIA는 올스타전 이후 5연패를 기록하자 기다렸다는듯 김성한 전감독을 경질한다.(2004년 7월 26일) 물론 후임에는 유남호가 감독대행 자리에 올랐다. 21세기 타이거즈 추락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후 KIA 타이거즈는 2005년 꼴찌 - 2006년 4위 - 2007년 꼴찌 - 2008년 현재 꼴찌 를 달리고 있는 훌륭한(?) 팀으로 변모했으며 언제쯤 타이거즈가 다시한번 한국야구를 호령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 팀이 돼버렸다.
김성한을 위한 변명 (2)- 김성한이 크게 욕을 먹은 사건 그 진실은 무엇일까?
김지영 선수 폭행사건. 이 사건이 발단이 돼 김성한이 해임된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일부 팬들이 있는데 이 사건은 2002년도에 일어난 사건이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전후 사정을 따지기 전에 이사건은 분명 김성한이 잘못한 사건이다. 사과문과 반복된 기사들도 많이 나왔으며 선수와 감독의 입장표명도 여러차례 나왔다.
여러가지 얽히고 설힌 실타래가 많지만 이건 변명하고 싶지가 않다. 양쪽 말이 모두 맞는듯 하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김성한은 지금까지 국내 스포츠계에서 만연되고 있는 선수체벌에 관한 잘못된 관행을 선수시절부터 몸으로 느꼈던 그리고 지도자가 된 이후 관행처럼 따라다니는 이런 행태를 버리지 못한것은 한국스포츠 전체적인 문제일 정도로 큰 교훈을 남겼다. 한가지 덧붙이지만 지금 SK 이호준이 해태시절, 그리고 KIA의 3할타자 장성호 역시 김성한이 타격코치로 있을때 맞고(당시 김성한이 언론에서 한말이다) 훈련을 했었다. 이걸 사랑의 매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선생님의 가혹한 처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때 폭주족 이었던 장성호가 프로초창기 시절 김성한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장성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석에서도 장성호는 자신의 야구인생의 은인으로 김성한을 자주 언급한다고 한다. 또한 이호준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가 김성한이 경질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에서 이호준과 이야기 했던 말이 지금도 머리속에 남아 있다. `저도 해태에 있을때 김성한 코치에게 혼난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운동 열심히 하지 않고 돌아다닌것을 좋아했잖아요. 그때 저를 안잡아 주었다면 지금 제가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드네요. 경질됐단 소리듣고 전화를 드렸는데 안받더군요. 저도 마음이 좋지 않네요.'
지금 김지영은 고향인 나주의 모 사회인 야구팀의 감독으로 있는걸로 필자는 알고 있다. 늘 하는일마다 건승하길 빈다. 또한 김성한 감독 역시 당시의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교훈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사람은 반복학습이라는 인지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 이 부분은 더 할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넘어가자(이부분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비밀 댓글로 남기시던지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주시라.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 설명해 드리리라.)
김성한을 위한 변명 (3)- 신용운과 방동민에 관한 문제
김성한 감독시절 KIA는 믿고 맡길만한 중간투수가 없었다. 또한 좌완 투수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음은 물론이다. 먼저 김상현을 LG에 내주고 데려온 나름 좌완 파이어볼러 방동민의 기용에 관한 변명을 좀 하자. 팀에서 믿고 맡길만한 좌완중간 투수가 없지만 그래도 젊은 선수중 눈에 띠는 선수가 있다. 그런데 그 선수가 공도 빠르고 잘만 지도하면 가능성이 있는 투수가 한명이 있다고 치자.
팀 상황은 급박하고 투수는 없으니 감독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선수를 키울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이 선수는 실망스러운 피칭을 하여 감독의 눈밖에 나게 된다. 김성한 시절 방동민을 대표하는 짧은 문장이다.
투수는 실전에서 맞으면서 큰다는 야구 격언이 있다. 천하의 선동열도 85년 후반기 삼성과의 데뷔전에서 난타를 당하고 프로의 쓴맛을 보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김성한을 비판(비난이라고 표현해야 옳을듯)하는 일부 KIA 팬들이 늘 하는 말이 방동민의 기용이다. 솔직히 이건 말도 안돼는 소리다.
방동민이 천하를 호령하는 엄청난 투수가 아니고서야 KIA로 이적하자 말자 전성기 시절 페드로와 같은 공을 던질수가 없지 않겠는가. 이것역시 김성한의 선수 길들이기의 한 방법이다. 결과론적으로 방동민의 기용은 실패작이었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갈게 있어 한마디 더 하자면 당시 김성한이 방동민을 엄청나게 실전에서 사용한 것처럼 착각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2002년 KIA로 이적한 방동민이 그의 모습을 감춘 2005년까지(2003년은 부상으로 등판기록 없음) 총 3년동안 던진 이닝이 불과 10.1 이닝이다.(2002년- 3.1이닝, 2004년- 6이닝, 2005년- 1이닝) 정말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김성한을 비난하는 일부팬들은 당시 방동민을 주구장창 주전처럼 기용하고 있는줄 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김성한이 떠난 2004년까지의 방동민 경기출장은 10이닝도 던지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신용운의 혹사문제는 나름 심각하다. 아무리 투수가 없었지만 한번 믿어버린 투수에 대한 과도한 기용은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운의 기용을 두고 `투수잡는 백정 감독' 이니 `혹사 감독'의 오명을 뒤집어 쓴게 김성한이다. 과연 그럴까?
작년 두산 임태훈 투수의 기록을 한번 보자. 2007년 그는 무려 64경기에 등판해 101.1 이닝을 던져 7승 3패 1세이브 20홀드를 기록한다. 두산이 이기는 경기다 싶으면 무작정 등판했다는 소리다. 그럼 신용운이 가장 많은 등판을 했던 2003년 성적은 어떨까. 그해 신용운은 70경기에 등판해 119이닝을 던져 11승 3패 4세이브 11홀드를 기록하는데 분명 중간투수로서는 엄청난 등판이다. 하지만 여기서 꼭 알아야 할것이 있다. 당시 2003년에는 경기수가 지금보다 7게임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중간투수가 작년의 두산과는 달리 당시 KIA는 거의 전무하다 시피해 선발투수들이 이닝을 먹어주지 못하면 팀 사정상 어쩔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작년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면 김경문 감독을 경질 시킨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김성한은 벼랑끝에 내몰린 그야말로 한게임 한게임을 목숨 걸고 경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경질의 압박때문이 가장 컷으니 말이다. 이건 KIA 팬이 아니면 당시의 김성한과 팀 내부를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물론 투수의 혹사문제는 필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2003년의 신용운의 무리한 등판은 김성한의 과오가 맞다.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 감독중에 혹사에서 자유로운 감독이 누가 있을까? 김성한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왜 유독 김성한을 떠올리면 신용운의 혹사를 먼저 꺼내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게 대표적인 말처럼 대명사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다.김성한이 투수잡는 백정이면 과거의 김성근은 투수죽이는 귀신이며 삼성시절 서정환은 임창용을 데려간 저승사자인가. 또한 김인식 감독은 류현진에 대해 자유로울수 있는가.
다시한번 말하지만 김성한의 신용운에 관한 부분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밖에 할수 없는 한국프로야구 현실에 안타까움을 먼저 느끼고 많은 감독들중 왜 유독 김성한을 혹사의 대명사로 생각하는지 난 정말 이해할수가 없다.
김성한을 위한 변명 (4)- 데이터 야구와 감의 야구에 관한 부분
데이터란 과연 무엇일까? 좋게 표현해 감각의 야구는 또 무엇일까? 이글을 읽고 있는 분중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한 사람있으면 댓글로 남겨주길. 필자는 아직도 이 표현을 잘 모른다. 그래서 한수 배우고자 드리는말이다. 김성한을 흔히 `감의 야구' 라고 표현한다. 즉흥적인 선수기용. 감각에 따라 타순과 오더를 짜는 감독 쯤으로 말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김성한이 재임시절 KIA 타이거즈의 대타기용과 치고 달리기는 `귀신이 달라붙었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엄청난 성공률을 자랑했다. 27년째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난 저런 감독을 보지 못했다.
톱니바퀴가 물려도 기름칠을 하지 않아도 될정도의 야구였는데 이건 감의 야구가 아니라 `현장 둘러보기' 야구라고 칭하고 싶다. 김성한이 얼마나 타이거즈의 역사와 호랑이를 사랑했고 정열적인 감독이였냐면 그는 원정경기를 가면 경기전 바지를 걷어올리고 반팔 티만 입고 직접 타자들의 배팅 연습을 지켜보며 불만이 있으면 일대일 지도를 했던 감독이다. 타격코치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자신의 눈에 차지 않으면 따로 불러 목이 쉴정도로 타자를 다독거리며 때로는 윽박지르며 노하우를 전수했던 감독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이런 감독이 있었을까. 그가 코치를 하던 시절에는 장성호와 이호준을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경기장에 나오게 해 짬뽕 한그릇 시켜먹고 더운 여름날 팬티만 입고 두 선수를 지도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이건 팀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고 열정이 없으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부 KIA 팬들은 이런 김성한을 감의 야구라고 한다. 기막힌 대타작전과 상황상황마다 터지는 치고 달리기 작전의 완벽한 조화를 보고서 말이다. 대타를 내거나 혹은 선발 오더를 짤때는 타자의 당일 컨디션을 보고 짜는게 기본이다. 연습할때 타자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어떤 선수를 쓸것인지 어떤 선수를 어떤 상황에서 대타를 낼건지 그리고 팬들이 추구하고 원하는것이 무엇인지(이상훈을 상대로 이대진의 3루타. 이건 감독이 미치지 않고서는 그상황에서 절대로 대타를 낼수 없는 것이다.) 알고 야구를 하는 감독이었다. 오랜 부상으로 인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지 불과 3개월밖에 안된 선수를 당시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 칭하던 이상훈을 상대로 대타를 낸다? 있을수 없는 배짱이다. 이것이야 말로 당일 타자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적시적소에 써먹는 김성한 식 데이터 야구가 아닌가?
데이터라는게 공식적인 룰이 있는게 뭐가 있을까? 어차피 확률의 경기인 야구에서 어떤 경로이던지 확률이 높으면 성공적인 데이터 야구가 아닌가? 그걸 김성한은 그것으로 보여주었다. 감의 야구가 아닌 `김성한 식 데이터 야구' 로 말이다. 데이터 하니까 무슨 거창한 컴퓨터 놀음이라고 알고 있는 일부팬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그 선수를 지도하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며 옥석을 가리는 것 역시 지도자다.
끝맺음
사실 이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타이거즈 성적이 좋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김성한 전감독을 다시 데려오자는 의견이 있어서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은 이제는 김성한의 KIA호 재입성을 반대한다. 그것도 시즌 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나의 영웅이 또다시 난도질 당하는 꼴을 더 이상 보기가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팀 성적의 좋고 나쁨을 떠나 김성한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이글을 쓰게 되었으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필자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조범현 감독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 아직 온전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루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조감독에게 당장 우승하라고 누가 협박하지도 않고(과거에 한번 경험을 했으니) 당장 강팀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무너진 팀 재건을 위해,그리고 훗날 타이거즈가 강팀이 될수 있는 초석을 만들어 달라는 그거 하나 필자는 부탁하고 싶다.
그 어렵고 참담했던 해태 마지막 시절 그리고 KIA 로 바뀐 이후 2000년대 초반, 팀을 당장에 강팀으로 올려놓은 감독. 그래서 팬들의 눈높이만 높혀놓고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는 죄로 떠난 김성한. 김성한만 나가면 그 어떤 감독이 오더라도 우승할수 있다고 주장했던 일부 팬들. 그가 떠난 이후 우승은 했는지 묻고 싶다. 이세상 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중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감독이 없을진데, 왜 김성한은 장점은 묻혀 버리고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단점만 부각이 되는것일까.
김성한을 부정했던 아니 씹지못해 안달이 났던 일부 KIA 팬들에게 또 묻고 싶다. 그 당시 KIA 야구는 재미라도 있지 않았나요?
'Korea Baseball' 카테고리의 다른 글
| KIA 이용규-김주형은 타이거즈의 미래다 (0) | 2008/05/13 |
|---|---|
| 에이스 윤석민의 호투와 최희섭 문제 (0) | 2008/05/04 |
| KIA의 부진과 김성한을 위한 변명 (1) | 2008/04/24 |
| KIA 선수들이여 고개를 들어라 (0) | 2008/04/16 |
| KIA의 부진,그리고 타자들 (0) | 2008/04/12 |
| 칼날위에 서있는 타이거즈 타격코치 (0) | 2008/04/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