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대(大)선수가 될수 없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명예감독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라 일컫는 나가시마 시게오의 명언이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는 표현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삶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고, 또 그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생과 비교하며 꿰맞추기 식의 비유법은 야구를 단지 스포츠가 아닌 삶의 연장선으로까지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야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스포츠도 인생과 비교해 모자름이 없다.
그라운드에서의 플레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것, 또는 보이는것에 대한 어떠한 것을 예측 또는 분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이지 이것을 굳이 거창한 "인생"이란 표현으로 야구가 지닌 매력을 설파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필자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단지 `야구' 이기 때문이지 왜? 라는 물음표가 덧붙인다면 그리고 꼭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 그건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에 포함될 것들이 못된다.
하지만 필드에서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겐 왜? 라는 명제에 반드시 부합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에겐 야구가 곧 ‘직업’ 이기 때문이다.
KIA 타이거즈 윤석민은 한때 `불운'의 대명사와도 같은 투수였다. 프로 입단 이후 지금까지 한팀의 에이스 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뒤따라와야할 것들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선발투수로 돌아섰던 2007년에는 3.78이란 빼어난 평균자책점에도 불구하고 18패(7승)나 당했고 2008년엔 평균자책점 1위(2.33)에 오르며 이듬해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에도 선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9승에 그쳤지만 겉으로만 보이는 성적이 윤석민의 실력을 정확히 대변해 줬던 것은 아니었다.
올 시즌 역시 예년과 다름없이 윤석민의 승수쌓기는 실패의 연속이다. 물론 지난 5월 26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처럼 단 0.2 이닝동안 난타를 당했던 적도 있었지만 최근 등판한 경기에서 모두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7이닝 이상을 책임졌음에도 이러한 불운이 지속됐던 것에 염증이라도 느꼈던 걸까?
급기야 윤석민은 지난주 금요일 경기(SK전)에서 8.1이닝을 던지고도 팀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라커룸 문을 주먹으로 쳐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당한것'이 아닌 입은 것이다.
▶ 윤석민의 행동, 과연 그 혼자만의 잘못일까?
KIA라는 팀은 정말로 이해할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팀이다. 몇년간 개선되지 않는 팀 타선의 `물방망이화'는 올해도 변함이 없는데, 믿을수 없는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 팀 타선의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이기고 있던 경기가 뒤에서 뒤집어 지는 경우가 이처럼 흔했던 전례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이것은 팀 타선이 초반부터 시원하게 점수를 뽑아 리드하는 경기를 자주 못한 것이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불펜의 과부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다승 선두에 올라와 있는 양현종이 언제까지 이러한 호사를 누릴거라고 장담할수 없다. 알수 없는 팀 타선이 만든 이 괴물과도 같은 팀 구조가 비단 윤석민에게만 한정된 불운이 아니라는 뜻이다.
▶ 그럼에도 이번 윤석민의 행동은 아쉽다.
야구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운동이다. 경기에서 5타수 5안타에 5타점을 쓸어담은 타자는 `잘했다'의 칭찬에 그치지만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투수에겐 `승리'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5일만에 등판해서.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개인적으로 투수보다 타자를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타자는 매일매일 상대하는 투수가 달라 데이터나 상대투수의 장단점을 하루도 빠짐없이 분석해야 하지만 선발투수는 등판일자가 정해져 있기에 자신이 상대하는 팀에 대한 분석을 무려 5일동안 연구할수 있는 시간이 있다.
얼마전 SK 김광현에게 "다시 태어나면 투수와 타자중 어떤걸 하고 싶냐?" 라는 질문에 "당연히 투수 하죠. 선발투수는 4일동안 놀잖아요. 연봉도 많이 주고(웃으면서)" 라는 인터뷰를 보며 야구가 지닌 이러한 이율배반성을 다시한번 느꼈었다.
이 말을 왜 꺼냈냐면 비록 윤석민에 대한 득점지원이 빈약한건 사실이지만 그역시 팀 타선의 도움을 받았던 적도 있고 덧붙여, 누구나 인정할만큼 최고 투수중 한명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은 빼어나진 않겠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왜 그럴수 밖에 없는 성적표인지는 구단이나 야구팬 모두 알고 있기에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했던 의도되지 않은 행동이라고 이해하며 넘어갈수 있지만 어째됐던 이번 사건은 분명히 윤석민에게도 문제가 있다. 나가시마의 명언처럼 어쩌면 윤석민에겐 지금이 대선수로 가는데 있어서 `노이로제'에 해당되는 시기 일지도 모른다.
▶ 노트북이 사라진 덕아웃, KIA 타격코치들의 무능함
올해부터 모든 구단의 덕아웃엔 노트북을 펼쳐놓고 경기를 치를수 없다.
이렇다 보니 상대투수에 대한 분석작업은 덕아웃에서 수작업으로 해야 하며 경기 상황상황마다 투수의 구종과 코스에 대한 모든 분석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전 이닝에서 던졌던 그리고 상대했던 타자와의 모든 구질과 구종에 대한 분석은 리플레이로 다시 돌려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게 참 중요하게 와닿는게 뭐냐면 이젠 그만큼 타격코치의 재능을 재단할수 있는 척도가 칼날 위에 서 있게 돼었다는 말이다. 가령, 예전 같으면 첫 타석에서 나지완이 삼진을 당했을때 상대투수의 투구패턴이나 나지완의 타격폼을 노트북에 저장해 영상을 리플레이로 돌려보며 다음 타석을 준비할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수가 없게 돼 현장에서 타격코치의 눈이 전력분석의 기준점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팀의 타격코치인 이건열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황병일 수석코치는 이러한 시스템에서의 타격코치 능력이 바닥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황병일 코치는 지난해 1군 타격코치를 맡으며 팀 타율을 꼴찌로 만들었고 올해 들어와서도 변함없이 꼴찌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에 있어서 변함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이다. 이왕에 쓴소리를 했으니 좀더 독설을 하자면,
시즌 전, 20홈런 타자를 5명, 경우에 따라서는 6명을 만들겠다는 그의 호언장담은 마치 이대호를 도루왕으로 만들겠다 또는 최준석을 명유격수로 키우겠다는 말과 같은 허황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무능의 극치다. 빛나는 현역생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프로출신 지도자인 황병일 코치이기에 이러한 말을 하는게 참으로 죄송스럽지만 어디 타격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타자의 성향을 쉽게 변화시킬수 있다는 그 오만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과거 오치아이 히로미츠(현 주니치 감독)가 어떻게 해서 모든 코치들의 쓴소리를 날려버리고 대타자로 성공했는지, 그리고 니혼햄 시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해 나갔는지를 공부좀 했으면 싶다. 이러한 예는 비단 야구인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과거의 전례를 찾아보면 타자의 타격성향을 쉽게 바꾼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수 있다. 타격은 틀에 박힌 수학공식이 아니기에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달라 지향해야할 목표점이 모두 다르다. 그걸 간과한 결과가 올 시즌 여실히 팀타선의 황폐화로 되돌아 오고 있으니 `단지 일시적인 현상' 라는 변명은 거둬줬으면 싶다.
다시 말하지만 선발투수들의 승수쌓기 실패, 뒷문을 책임지고 있는 투수들의 연이은 블론세이브는 비단 투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야구는 타선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진/ KIA 타이거즈 제공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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